텃밭에서 방울토마토를 거두고, 저녁에 고등어 한 마리를 굽습니다. 직접 기른 채소는 씨앗부터 수확까지 손으로 알 수 있습니다. 어떤 흙에 심었는지, 물을 얼마나 줬는지, 수확 시점이 적절했는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반면 식탁에 오른 생선이 어느 바다에서 잡혀, 어떤 손을 몇 번이나 거쳐 왔는지는 포장지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습니다.
배 위의 이주 노동자
전 세계 수산물 공급망에서 어업 노동력의 상당 부분은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 노동자들이 담당합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취업 알선 수수료로 고액을 치르고 외국 어선에 오릅니다. 출항 전에 계약서에 서명하지만, 항해가 시작되면 조건이 달라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계약에 없던 초과 노동이 요구되거나 임금이 줄어들어도, 선상에서는 이를 외부에 알리거나 도움을 구할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약서 사본을 받지 못한 채 배에 오르는 노동자도 있습니다. 나중에 분쟁이 생겨도 본인이 서명한 내용을 다시 확인하기 어렵고, 육지와 연락이 닿지 않는 환경에서는 권리를 주장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이러한 조건이 수산물 공급망 노동 착취를 오랫동안 가능하게 한 배경입니다.
IKAN, 권리를 추적하는 도구
2020년, 국제 수산물 지속가능성 재단(ISSF, International Seafood Sustainability Foundation)은 스탠퍼드 대학교 해양솔루션센터(Center for Ocean Solutions)와 함께 수산물 공급망의 사회적 지속가능성 문제를 검토했습니다. 단기 연구로 그치지 않고, 수년간 다양한 현장 파트너들과 논의하고 시험하며 완성한 것이 IKAN이라는 디지털 플랫폼입니다.
IKAN은 이주 어업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고, 계약 조건이 실제로 지켜지는지 추적하며, 문제가 생겼을 때 정보를 확인하고 지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설계된 도구입니다. 계약 내용을 디지털로 기록해 이후 실제 노동 조건과 대조할 수 있고, 이상이 생겼을 때 보고할 경로도 갖추고 있습니다. 이 플랫폼이 어선 현장에 도입되면 계약 이행 여부가 데이터로 쌓입니다. 그 데이터는 어업 회사, 유통사, 인증 기관 모두에게 공급망 책임의 근거가 됩니다.
소비자가 묻는 것부터
텃밭을 가꾸다 보면 작물의 출처에 민감해집니다. 씨앗이 어느 회사 것인지, 퇴비는 무엇을 쓰는지 따지며 고르게 됩니다. 그 관심을 수산물 구매로 이어갈 수 있습니다. 마트에서 생선을 고를 때 MSC(해양관리협의회, Marine Stewardship Council) 인증 마크를 찾아보세요. 지속가능한 어업 기준을 통과한 제품에 붙는 마크로, 공급망 책임을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소비자가 출처를 묻기 시작하면, 유통사는 그에 답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IKAN 같은 도구가 어업 현장에 자리를 잡으면, 그 질문에 데이터로 답하는 공급망이 차츰 만들어집니다. 수산물에도 계약 이행 기록이 쌓일수록, 소비자가 더 알고 고를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장을 볼 때, 생선도 한 번 더 살펴보세요. 어디서 왔는지, 누가 잡았는지.
참고: 국제 수산물 지속가능성 재단 · 스탠퍼드 대학교 해양솔루션센터, IKAN 플랫폼 개발 보고서(2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