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텃밭에 나가 상추 잎을 몇 장 따 오면 그날 식탁 한 자리는 쉽게 채워집니다. 쌈으로 싸 먹고, 겉절이로 무치고, 샐러드로 올려도 손이 가벼운 채소죠. 그런데 "상추를 먹으면 잠이 잘 온다"는 옛말이 워낙 익숙하다 보니, 정말 그런지 궁금해집니다. 상추의 효능은 항목마다 뒷받침되는 근거의 강도가 다릅니다. 어떤 것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까지 있고, 어떤 것은 성분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수준입니다. 하나씩 정직하게 짚어 보겠습니다.
수면을 돕는 효능 — 가장 잘 뒷받침됩니다
상추의 여러 효능 가운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가장 많이 쌓인 항목이 수면입니다. 잠이 얕은 한국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에서, 상추 추출물을 4주간 먹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쪽보다 총 수면시간이 길어지고 잠든 뒤 깨어 있는 시간이 절반가량으로 줄었습니다. 잠의 질을 평가하는 점수도 더 좋게 나왔습니다.
이런 효과가 왜 생기는지도 일부 밝혀져 있습니다. 상추의 쓴맛을 내는 성분인 락투신이 진정·수면과 관련된 우리 몸의 수용체에 작용하는 것으로 관찰됩니다. 동물 실험에서도 상추 추출물을 먹이면 잠드는 시간이 짧아지고 수면이 더 오래 유지되었습니다. 전남농업기술원이 오랜 연구 끝에 등록한 흑하랑 상추는 이 락투신을 일반 상추보다 100배 넘게 함유한다고 보고됩니다.
다만 한 가지 함께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 연구들은 대부분 상추 잎이 아니라 추출물이나 씨앗을 농축한 형태를 다뤘습니다. 그러니 텃밭 상추 잎을 그대로 먹는 것이 캡슐만큼의 효과를 낸다고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저녁 식탁에 상추를 곁들이는 습관은 충분히 권할 만하지만, 잠 문제를 약처럼 해결해 주리라 기대하기보다는 편안한 식사의 일부로 두는 편이 적절합니다.
적상추의 항산화 색소 — 근거가 탄탄합니다
붉은빛이 도는 적상추에는 안토시아닌과 페놀화합물 같은 항산화 성분이 풍부합니다. 성분을 분석한 연구에서 적상추는 이런 색소 덕분에 항산화 능력이 높게 측정되었습니다. 다만 색이 짙다고 무조건 항산화력이 센 것은 아닙니다. 같은 연구에서 전체 폴리페놀과 종합 항산화 능력은 오히려 녹색 품종이 더 높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적상추와 청상추를 함께 곁들여 먹는 편이 균형이 좋습니다.
엽산과 비타민 공급원 — 영양 분석이 받쳐 줍니다
상추는 엽산의 좋은 공급원입니다. 채 썬 로메인 한 컵에 하루 권장량의 약 16%에 해당하는 엽산이 들어 있습니다. 품종에 따라 엽산 함량은 여러 배 차이가 나는데, 아이스버그처럼 연한 잎보다 짙은 색 잎상추가 더 많습니다.
비타민 K와 베타카로틴, 눈 건강에 관여하는 루테인도 넉넉합니다. 녹색·적색 잎상추는 아이스버그에 견주어 베타카로틴이 스무 배가량 많다고 분석됩니다. 베타카로틴은 몸 안에서 비타민 A로 바뀌어 시력과 면역에 보탬이 됩니다. 같은 상추라도 잎 색이 짙은 품종을 고르면 영양을 더 챙길 수 있어요.
아직 단정하기 이른 효능들
식사에 상추를 곁들이면 식후 혈당이 천천히 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건강한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기름진 식사에 상추를 함께 먹자 식후 혈당이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상추의 식이섬유가 당 흡수를 늦추는 것으로 설명되지만, 이 효과가 모든 잎채소에 똑같이 적용되는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적색 품종이 암이나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분과 시험관 수준에서 가능성이 제시된 단계일 뿐, 사람에게서 질병을 예방한다고 직접 입증되지는 않았습니다. 상추를 들기름과 함께 먹으면 지용성 영양소 흡수가 좋아진다는 설명도 영양학의 일반 원리에 기댄 통설이며, 상추로 직접 비교한 연구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민간에서 오래 전해 온 지혜로 받아들이되, 과하게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맛있게 챙겨 먹는 법
상추는 열에 약하고 씻으면 영양 손실이 적으니 생으로 먹는 쌈·샐러드가 가장 잘 맞습니다. 청상추와 적상추를 섞어 색을 더하고,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살짝 둘러 무치면 지용성 영양소를 챙기면서 맛도 좋아집니다. 저녁 식탁에 한 접시 곁들여 보세요. 짙은 색 품종을 골라 두면 같은 양으로도 더 든든하게 드실 수 있습니다.
상추는 기르기 쉬운 만큼 효능도 소박하게, 그러나 정직하게 우리 몸을 돕는 채소입니다.
참고: 흑하랑 상추 수면 개선 임상 연구, 전남농업기술원, 미국 국립보건원 영양 자료, 터프츠 건강영양레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