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깊어지면 벼는 꽃을 피웁니다. 작고 희고 금세 지는 꽃입니다. 한 송이가 열려 있는 시간은 길어야 두 시간, 이 짧은 시간 안에서 수정이 이루어지고 낟알 하나가 자리를 잡습니다.
최근 몇 해 동안 한여름 기온이 오르면서, 벼꽃이 피는 오전 시간대에 기온이 35도를 넘는 날이 잦아졌습니다. 이 온도에서는 꽃가루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수정률이 떨어지고, 낟알이 여물지 않은 채 빠지면 수확량이 그만큼 줄어듭니다.
새벽에 꽃을 여는 유전자
일본 농업·식품산업기술종합연구기구(NARO)와 국제쌀연구소(IRRI) 연구팀은 벼가 스스로 개화 시각을 조정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 조정을 이끄는 유전자가 EMF3(Early Morning Flowering 3)입니다.
보통 벼꽃은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열립니다. EMF3가 활성화된 품종은 오전 7시 30분 무렵, 약 한 시간 반 앞서 꽃을 열었습니다. 이른 아침에는 기온이 아직 30도 아래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꽃가루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온도입니다.
연구팀은 이 유전자로 개화 시각을 앞당기면 열대·아열대 지역에서 폭염으로 인한 수확량 감소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학술지 『식물 생명공학 저널(Plant Biotechnology Journal)』에 실렸습니다.
개화 시각이 달라지는 이유
벼꽃이 피는 시각은 처음부터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온도, 빛의 양, 유전자 조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집니다. EMF3는 그 조합에서 개화 시각을 결정합니다.
품종마다 이 유전자의 활성도가 다릅니다. 일부 벼 품종에서는 이미 이른 시간 개화 특성이 관찰되어 왔는데, 이번 연구는 그 원인 유전자를 특정했습니다. 앞으로 육종 과정에서 이 유전자를 쓰면 더 이른 시간에 안정적으로 꽃을 피우는 품종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엘니뇨(El Niño) 영향으로 여름 기온이 높아지는 추세가 이어지는 만큼, 개화 시각 조정은 벼 품종 개량에서 앞으로 더 많이 다뤄질 것입니다.
텃밭에서 벼를 키운다면
집에서 소규모로 벼를 재배하는 경우, 개화기에 어떤 조건이 갖춰지느냐가 수확량에 영향을 줍니다. 이른 개화 특성을 가진 품종이 상용화되면, 한여름 폭염이 잦은 지역에서도 수정 성공률이 올라갈 것입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개화기에 텃밭을 살피는 것입니다. 오전 일찍 벼 이삭을 들여다보세요. 작은 꽃이 열리고 꽃가루가 흘러내리는 순간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폭염 예보가 있는 날에는 이랑에 물을 넉넉히 채워 지면 온도를 낮춰 주세요. 수정 조건에 작은 차이가 생깁니다.
벼 한 포기에서 낟알이 맺히기까지, 개화는 가장 취약한 순간입니다. 그 순간을 더 서늘한 시간대로 옮기는 방법을 과학이 찾아가고 있습니다.
참고: 일본 농업·식품산업기술종합연구기구(NARO)·국제쌀연구소(IRRI), Plant Biotechnology Journ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