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 도감

곡물 벌레를 줄이는 새 방법, 친숙한 발효균에서 찾습니다

넓게 뿌리는 농약 대신, 해충의 유전자 하나만 골라 멈추게 하는 RNA 방제 연구입니다

쌀독을 열었다가 바닥을 기어 다니는 작은 갈색 벌레를 본 적,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텃밭에서 거둔 콩이나 들깨를 말려 두었는데 어느새 가루가 일고 벌레가 보이는 경우도 비슷하죠. 곡물과 가루를 좋아하는 이 작은 딱정벌레는 한번 들어오면 빠르게 불어납니다.

밭에 농약을 뿌리기가 망설여지는 분이라면, 저장한 곡물에 약을 치는 일은 더 꺼려질 겁니다. 한 연구가 여기에 다른 방향을 내놓았습니다. 사람에게 익숙한 발효균을 써서, 해충의 특정 유전자 하나만 골라 멈추게 하는 방법입니다.

곡물을 갉아먹는 작은 딱정벌레

이번 연구가 다룬 해충은 곡물과 밀가루에 꼬이는 작은 딱정벌레입니다. 학명은 트리볼리움 카스타네움(Tribolium castaneum)으로, 영어권에서는 붉은 빛을 띤다고 해서 '붉은밀가루딱정벌레'라 부릅니다. 저장한 쌀과 밀가루, 사료를 가리지 않고 파고들어, 곡물을 다루는 곳에서는 오래전부터 골칫거리였습니다.

이런 저장 해충은 보통 살충제로 다스립니다. 다만 약을 친 곡물을 먹기는 찜찜하고, 같은 약을 오래 쓰면 벌레가 견디는 힘을 키워 효과가 떨어집니다. 사람과 곡물에 부담을 덜 주면서 해충만 골라 줄이는 방법을 찾는 이유입니다.

해충의 유전자 하나만 골라서 끕니다

연구진이 쓴 방법은 RNA 간섭(RNAi)입니다. 생물의 몸 안에서 유전자가 일을 하려면 그 정보를 옮기는 RNA가 필요한데, 두 가닥으로 짝을 이룬 RNA, 곧 이중가닥 RNA가 들어오면 세포가 그에 들어맞는 유전자의 작동을 스스로 멈춥니다. 어떤 유전자를 끌지는 넣어 주는 RNA의 순서로 정해집니다.

연구진은 이 딱정벌레가 자라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두 유전자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 유전자에 들어맞는 이중가닥 RNA를 먹이에 섞어 유충에게 주자, 살아남는 비율과 번데기로 자라는 비율이 뚜렷이 낮아졌고, 목표한 유전자의 작동도 함께 줄었습니다. 사람이나 다른 곤충과는 유전자 순서가 달라, 정해 둔 해충에만 작용하도록 맞출 수 있다는 점이 이 방법의 장점입니다.

발효에 쓰던 균을 생산에 씁니다

남는 문제는 이 이중가닥 RNA를 어떻게 값싸게 많이 만드느냐입니다. 연구진은 고초균(Bacillus subtilis)을 골랐습니다. 청국장과 낫토를 띄울 때 일하는 그 균으로, 안전성이 잘 알려져 있고 큰 통에서 대량으로 키우기 쉽습니다.

다만 이 균은 원래 이중가닥 RNA를 잘라 없애는 효소를 갖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그 효소를 만들지 못하도록 균을 바꿔, 애써 만든 RNA가 분해되지 않게 했습니다. 여기에 RNA를 더 많이 만들어 내도록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부위까지 손보자 생산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이렇게 손본 균을 유충에게 먹였을 때 앞서 본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텃밭에 오기까지, 아직은 연구 단계

솔깃한 소식이지만 짚을 점도 있습니다. 이번 결과는 실험실에서 인공 먹이에 섞어 먹인 조건에서 나왔습니다. 실제 곡물 창고나 텃밭에서 같은 효과가 날지, 비용은 맞을지는 더 확인해야 합니다. 시중에서 사다 쓸 수 있는 제품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여 준 연구 단계라는 뜻입니다.

그래도 이런 연구가 늘어나는 이유는 짐작할 만합니다. 넓게 뿌려 벌과 이로운 벌레까지 줄이는 약 대신, 정해진 해충의 유전자에만 작용하고 시간이 지나면 분해되는 방제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텃밭을 가꾸는 사람에게는 반가운 흐름입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합니다. 거둔 콩과 깨, 곡물은 바싹 말려 밀폐 용기에 담고, 서늘한 곳에 두어 벌레가 깃들 틈을 줄여 보세요. 이런 친환경 방제가 텃밭과 부엌으로 내려오는 날을 기다리면서, 오늘은 곡물 보관부터 챙겨 두면 좋겠습니다.

참고 — 학술지 페스트 매니지먼트 사이언스에 실린 고초균 이중가닥 RNA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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