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면 텃밭 한쪽 도라지 자리부터 살피게 됩니다. 잎이 몇 장인지, 줄기가 몇 갈래로 올라왔는지 세어 보고 올해는 캐도 되겠다고 판단합니다. 땅속은 들여다볼 수 없으니 땅 위의 모습으로 짐작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야생 인삼을 캐는 사람들도 같은 방법을 씁니다. 다만 그쪽은 각자의 눈대중이 아니라 법으로 기준을 정해 두었습니다.
나이와 잎으로 정해 둔 수확 규정
미국삼(American ginseng)은 우리 인삼과 같은 두릅나무과 식물입니다. 뿌리를 약재로 쓰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산에서 캐 왔고, 지금도 수출 물량의 상당 부분이 야생에서 나옵니다. 개체 수가 줄자 미국은 캘 수 있는 그루의 조건을 규정으로 정했습니다.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다섯 해 이상 자랐고 잎줄기가 셋 이상인 그루만 캘 수 있습니다. 캔 자리에는 그 그루의 씨앗을 묻어야 합니다.
나이와 잎 수를 기준으로 삼은 이유는 단순합니다. 산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그것뿐입니다. 뿌리 무게를 달거나 한 해 동안 맺은 씨앗을 세어 볼 수는 없으니, 눈으로 셀 수 있는 지표로 대신한 것입니다.
잎 수가 말해 주지 않는 것
예일대학교 환경대학원 연구팀이 미국삼 개체군 자료를 다시 분석한 결과, 나이와 잎 수는 보전에 정작 중요한 특성을 잘 예측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씨앗을 얼마나 맺는지, 이듬해까지 살아남는지 같은 항목은 잎 수와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자라는 속도가 자리마다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늘이 짙고 낙엽이 두껍게 덮인 곳에서는 여러 해를 자라고도 잎줄기가 셋에 머물지만, 볕과 물이 맞는 자리에서는 훨씬 이른 나이에 넷을 올립니다. 잎 수로 나이를 환산하면 이 차이가 규정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규정을 지켜 캤는데도 그 지역 개체군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셀 수 있는 지표 하나에 기대기보다 식물의 실제 크기까지 함께 보는 쪽으로 기준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텃밭에서 캐는 때를 읽는 법
텃밭의 뿌리채소도 사정이 비슷합니다. 도라지와 더덕, 우엉은 몇 년생인지를 보고 캘 때를 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같은 날 같은 씨앗을 뿌렸어도 자리에 따라 뿌리 굵기가 눈에 띄게 벌어집니다.
- 씨앗을 받을 그루는 남겨 두고, 꽃대가 굵고 열매가 실한 것부터 표시해 보세요.
- 캐기 전에 흙을 한 뼘만 헤쳐서 뿌리 윗부분 굵기를 손으로 확인해 보세요. 손가락에 못 미치면 한 해 더 두는 편이 낫습니다.
- 같은 이랑이라도 볕이 덜 드는 쪽은 한 해 늦춰 캐 보세요.
- 캔 자리에는 그 그루에서 받은 씨앗을 그날 바로 묻어 두세요.
올가을에는 심은 해를 적어 둔 기록보다 그루마다 잎과 꽃대를 먼저 살펴보세요. 나이가 같아도 캘 준비가 된 정도는 그루마다 다릅니다.
참고 — 예일대학교 환경대학원 연구팀이 학술지 환경연구레터스에 발표한 미국삼 채취 규정 분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