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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물 도감

삽을 넣으면 위쪽 한 뼘만 검은 이유

12년치 토양 기록이 알려 주는 부식질과 질소 관리

삽을 깊이 넣어 흙을 뒤집으면 위쪽 한 뼘 정도만 검고 부슬부슬합니다. 그 아래는 색이 옅어지고 손에 쥐면 덩어리집니다. 텃밭 상자를 서너 해 쓰신 분이라면 첫해에 채워 넣은 흙과 지금 흙의 빛깔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셨을 겁니다.

흙의 검은 빛을 만드는 것은 부식질입니다. 뿌리와 낙엽, 지렁이 배설물을 미생물이 분해하고 남은 유기물이 흙 알갱이 사이에 자리 잡은 상태를 말합니다.

검은 흙이 하는 일

부식질은 자기 무게의 몇 배에 이르는 물을 머금습니다. 장맛비에는 물을 빨아들이고 마른 날에는 천천히 내어 주기 때문에, 같은 날 물을 준 이랑이라도 부식질이 넉넉한 쪽이 훨씬 늦게 마릅니다. 양분을 붙잡아 두는 성질도 있습니다. 웃거름으로 준 칼슘과 마그네슘, 칼륨은 빗물에 씻겨 나가기 쉽습니다. 부식질은 이 양분을 표면에 붙잡아 두었다가 뿌리가 빨아들일 때 놓아 줍니다.

흙 알갱이를 뭉치게 해 작은 덩어리로 만드는 역할도 합니다. 덩어리 사이에 생긴 틈으로 공기가 드나들고 잔뿌리가 뻗습니다. 부식질이 줄면 이 틈이 먼저 사라집니다. 비 온 다음 날 흙 표면이 판판하게 굳고 물이 고인다면 유기물이 모자라다는 신호입니다.

12년 치 기록이 보여 준 흙의 변화

카자흐스탄 북부 코스타나이는 밀을 대규모로 재배하는 곡창 지역입니다. 이곳 연구진이 2012년부터 2023년까지 쌓인 토양 검정 자료를 모아 흑토와 밤색토 경작지의 부식질과 질산태 질소를 살폈습니다.

경작지의 부식질은 한 번도 갈지 않은 인근 초지보다 낮았고, 대부분 중간에서 낮은 등급에 머물렀습니다. 질산태 질소는 넓은 면적에서 낮거나 매우 낮게 나왔습니다. 작물이 자라는 동안 뿌리가 끌어 쓸 질소가 넉넉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깊이별로 보면 부식질과 질소 모두 쟁기가 닿는 표층에 몰려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지역 흙에서 지력이 떨어지는 과정이 이어지고 있다고 정리하고, 정기 검정과 흙을 되살리는 경작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텃밭은 면적이 작을 뿐 사정이 비슷합니다. 상추와 열무를 뽑아 갈 때마다 잎에 담긴 질소와 탄소가 함께 밭 밖으로 나갑니다. 화학 비료는 질소를 채워 주지만 부식질까지 채우지는 못합니다.

거두어 간 만큼 되돌려 주기

먼저 밭 밖으로 나가는 양을 줄이고, 나간 만큼 다른 유기물로 메워 주세요.

  • 수확 뒤 남은 뿌리와 줄기는 잘게 잘라 이랑 위에 덮어 보세요. 씨앗을 맺은 잡초만 골라내면 됩니다.
  • 가을걷이가 끝난 자리를 맨흙으로 두지 말고 호밀이나 헤어리베치를 뿌려 겨울을 나게 하세요. 봄에 갈아 넣으면 유기물과 질소를 함께 남깁니다.
  • 완숙 퇴비는 한 번에 두껍게 넣기보다 얇게 여러 번 나눠 주는 편이 낫습니다.
  • 콩이나 완두를 두세 해에 한 번 돌려짓기로 넣어 보세요. 뿌리혹박테리아가 공기 중 질소를 흙에 남깁니다.
  • 질산태 질소는 물에 잘 녹아 빗물과 함께 빠져나갑니다. 웃거름은 큰비 직전을 피하고 조금씩 나눠 주세요.

흙을 파헤치는 횟수를 줄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갈아엎을 때마다 공기가 들어가 유기물 분해가 빨라지고, 그만큼 부식질이 줄어듭니다. 씨 뿌릴 자리만 얕게 긁고 나머지는 덮어 두어도 상추와 쪽파는 잘 자랍니다.

오늘 뽑은 잡초 가운데 씨앗이 없는 것만 골라 이랑 위에 그대로 덮어 두세요. 한 해만 이어 가도 이듬해 봄 삽날에 닿는 흙의 감촉이 달라집니다.

참고. 브라질 생물학 저널에 실린 코스타나이 지역 경작 토양의 부식질·질산염 함량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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