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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치커리가 쓴 이유와, 그 쓴맛을 낮추는 열흘

락투코피크린이 만드는 맛, 빛을 막아 다루는 법, 잎과 뿌리를 갈라 보는 선까지

8월 말, 꽃대를 올린 여름 상추를 뽑아내고 나니 이랑이 비었습니다. 여름 내내 겉잎을 뜯던 자리죠. 이 자리에 다시 씨를 뿌릴 잎채소를 고르다 치커리(Cichorium intybus)를 집는 사람이 많습니다. 북반구 기준 3~4월과 8~9월이 씨 뿌리는 시기이고, 늦여름에 뿌린 씨는 10~11월까지 잎을 냅니다. 그렇게 기른 첫 잎을 한 장 뜯어 입에 넣은 다음 검색창에 적어 넣는 말은 대개 같습니다. 왜 이렇게 쓸까요.

쓴맛을 만드는 것

치커리의 쓴맛은 락투코피크린(lactucopicrin)과 락투신(lactucin)에서 옵니다. 상추 줄기를 자를 때 배어 나오는 흰 즙의 성분과 같은 세스퀴테르펜 락톤(sesquiterpene lactone) 계열입니다. 치커리는 국화과 치커리속, 상추는 국화과 상추속으로 속이 다른데도 쓴맛을 내는 성분 계열은 겹칩니다.

이 성분이 몸에 어떤 작용을 한다고 말하기에는 근거가 모자랍니다. 잎을 채소로 먹었을 때 사람에게서 확인된 것은 성분 조성까지입니다. 그러니 쓴맛은 맛의 문제로 다루면 됩니다. 맛의 문제라면 밭에서 줄일 수 있습니다.

쓴맛의 세기는 거두기 열흘 전에 갈립니다

씨를 뿌리고 40일이면 바깥 잎부터 뜯을 수 있습니다. 포기째 뽑지 않고 겉잎만 차례로 걷어 내면 한 포기에서 여러 번 거둡니다. 맛을 순하게 하려면 거두기 전 열흘을 씁니다. 수확 열흘 전에 빛을 막아 두면 쓴맛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화분을 뒤집어 씌우거나 검은 상자를 덮고, 겉잎을 모아 느슨하게 묶어 속잎에 빛이 닿지 않게 해 보세요. 물은 그대로 주되, 덮개 안이 눅눅해지지 않도록 하루 한 번은 열어 봅니다.

빛을 덜 받은 속잎은 색이 옅어지고 맛이 부드러워집니다. 치커리를 많이 기르는 나라는 벨기에·프랑스·네덜란드·폴란드·이탈리아이고, 빛을 막아 속잎을 길러 내는 방법도 이 나라들에서 씁니다.

이름이 섞이는 자리

《동의보감》 채부(菜部)에는 고거(苦苣) 항목이 있습니다. 성질이 차고 맛이 쓰다고 적었습니다. 고거는 곧 야거(野苣)이며 편거(褊苣)라고도 한다는 이름 풀이를 달았고, 뿌리는 따로 두었습니다. 같은 채부의 와거(萵苣·상추)와는 별개 항목입니다. 다만 고거가 오늘의 어떤 식물인지는 견해가 갈립니다. 치커리 무리로 옮겨 읽는 쪽이 있는가 하면, 한국 본초에서는 씀바귀류로 읽기도 합니다. 옛 의서에 적힌 기록이고, 오늘날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영어 이름에서도 섞입니다. wild lettuce라 부르는 풀(Lactuca virosa·Lactuca serriola)은 상추와 같은 상추속이라 치커리와는 속부터 다른 식물입니다. 쓴 잎을 내는 채소끼리 이름을 나눠 쓰다 생긴 일이니, 씨앗 봉투를 살 때는 학명을 함께 보는 편이 낫습니다. 심는 달과 거두는 달을 한자리에서 맞춰 보려면 호미클럽 작물도감의 치커리 항목을 열어 두고 달력에 옮겨 적어 보세요.

식탁에서 쓴맛을 눅이는 법

쓴맛은 지방과 함께 먹으면 눅어집니다. 잎을 뜯어 샐러드로 낼 때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르고 호두나 잣을 부수어 얹어 보세요. 붉은 잎이 도는 라디키오는 기름을 발라 팬에 구워도 좋습니다.

고기와 함께 낼 때는 상추 대신 치커리를 쌈 채소로 씁니다. 잎이 얇으면서 질기지 않아 한 장으로도 쌈이 되고, 쓴맛이 삼겹살의 기름진 맛을 덜어 냅니다. 쓴맛이 부담스러우면 상추와 반씩 섞어 담아 보세요.

가을에 캔 뿌리는 따로 씁니다. 씻어 얇게 썰어 말린 뒤 진하게 볶으면 커피와 비슷한 향이 납니다. 카페인이 없어 커피 대신 마시거나 원두에 섞습니다. 나폴레옹 시대 대륙봉쇄로 커피가 끊겼을 때 유럽에서 퍼진 방법이고, 미국 뉴올리언스의 커피에 남아 있습니다. 뿌리에는 이눌린(inulin)이 생중량의 15~20 % 들어 있어, 장에서 발효되는 다당류를 뽑는 식품 원료로도 씁니다.

몸에 닿는 자리에서 살필 것

  • 치커리는 국화과라 쑥·돼지풀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교차반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처음 먹을 때 입안이 가렵거나 목이 조이는 느낌이 들면 멈추고 상태를 살핍니다. 세스퀴테르펜 락톤 때문에 생기는 접촉성 피부염도 보고된 사례가 있습니다.
  • 이눌린은 대장에서 세균이 발효시키고, 이때 가스가 생깁니다. 뿌리 분말이나 보충제로 하루 10 g 이상을 갑자기 먹으면 배가 부풀고 변이 묽어지기 쉽습니다. 양을 올릴 때는 적게 시작해 며칠에 걸쳐 늘립니다. 잎을 나물로 먹는 정도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치커리 뿌리가 담즙 분비를 늘린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담석이 있거나 담도가 막힌 적이 있다면 뿌리 농축물과 추출물은 피하고, 쓰기 전에 진료를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잎을 먹는 것과 뿌리 농축물을 쓰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늦여름에 씨를 뿌렸다면 달력에 두 날짜를 적어 두세요. 씨 뿌린 날로부터 40일 뒤가 첫 수확일이고, 그보다 열흘 앞선 날이 덮개를 씌우는 날입니다. 앞 날짜를 지키면 뒤 날짜에 뜯는 잎의 맛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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