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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gda Ehlers on Pexels

동의보감

시금치, 동의보감이 본 건강

차고 단맛이 나는 잎채소, 동의보감은 장을 윤택하게 하고 술독을 푸는 채소로 보았습니다.

텃밭 한 귀퉁이의 단골손님

이른 봄이나 가을 텃밭을 둘러보면 호미님 손길이 가장 자주 닿는 작물 가운데 하나가 시금치일 겁니다. 추위에 강해서 서늘한 날씨에도 잘 버티고, 한 번 데쳐 무치면 밥상 위에서 빠지지 않는 채소이지요. 뿌리 쪽이 발그스름하게 물든 모습을 보신 적이 있을 텐데, 옛사람들도 바로 그 붉은 뿌리를 눈여겨보았습니다.

흙에서 막 뽑아 흙을 털어낸 시금치 한 단을 들고 부엌으로 향하는 장면, 그 익숙한 채소를 두고 동의보감은 어떤 이야기를 남겼을까요. 늘 먹던 나물이라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옛 의서의 시선으로 다시 보면 시금치 한 잎에도 제법 긴 내력이 담겨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이렇게 봅니다

동의보감은 시금치를 '적근채(赤根菜, 붉은 뿌리 채소)'라 불렀습니다. 뿌리 부분이 붉은 빛을 띠는 데서 온 이름인데, 옛 의서는 이 붉은색을 보혈과 간을 돕는 작용으로 풀이하는 전통적 해석을 남겼습니다.

성질을 보면 시금치는 차가운 성질에 맛은 달고, 독은 없는 채소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약 기운이 가닿는 곳은 대장과 위, 간과 신장으로 보았습니다.

주된 효능으로 동의보감이 꼽은 것을 몇 가지 풀어 보겠습니다. 먼저 오장의 사기(邪氣)를 풀어 몸을 두루 보양하고 해독을 돕는 채소로 보았습니다. 또 술독을 푸는 것(解酒)으로 여겨, 음주 뒤에 시금치를 무쳐 먹거나 국으로 끓여 먹는 풍습은 한국과 중국 모두에서 오래 이어진 정설입니다.

장을 윤택하게 해 변을 잘 통하게 하는 것(潤腸通便)도 동의보감이 본 시금치의 쓰임입니다. 점액질이 풍부한 잎채소의 성질을 두고 옛사람들은 장이 부드러워진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에 음식을 잘 내려가게 해 소화를 돕는 것(下食)으로도 여겼습니다. 무거운 식사 뒤 시금치 한 접시가 속을 편하게 한다고 본 셈입니다.

다만 동의보감은 주의할 점도 함께 적어 두었습니다. 시금치가 본래 차가운 성질이라, 신장이 약하거나 몸이 찬 분, 평소 설사 기미가 있는 분은 자제하는 편이 좋다고 보았습니다. 또 많은 양을 오래 먹으면 다리와 허리가 시릴 수 있다는 견해도 남겼습니다.

오늘의 영양학과 견주면

동의보감이 시금치를 '간을 돕고 보혈하는' 채소로 본 대목은, 시금치가 철분과 엽산을 비교적 풍부하게 지닌 잎채소라는 오늘날의 상식과 나란히 놓고 보면 흥미로운 겹침이 있습니다. 붉은 뿌리에 보혈의 뜻을 둔 옛 해석을, 현대 영양학이 곧장 증명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같은 채소를 두고 시대가 다른 두 시선이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장을 윤택하게 한다는 동의보감의 풀이도, 시금치가 식이섬유를 넉넉히 품은 채소라는 점과 결을 같이합니다. 점액질과 섬유질을 두고 장이 부드러워진다고 본 옛 표현이, 오늘의 말로 옮기면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술독을 푼다는 전통적 해석 역시, 음주 뒤 채소와 수분을 챙기는 오늘날의 식습관과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한 가지, 현대 관점에서 덧붙일 주의가 있습니다. 시금치에는 옥살산이 적지 않게 들어 있어, 신장결석 병력이 있는 분은 많은 양을 자주 드는 것을 자제하시는 편이 좋다고 봅니다. 차가운 성질을 조심하라던 동의보감의 당부와, 우연히도 비슷한 결의 권고이지요.

텃밭에서 식탁으로

시금치를 즐기는 가장 흔한 방법은 살짝 데쳐 무쳐 먹는 것입니다. 동의보감이 적어 둔 용법도 데쳐 무치거나 국으로 끓이고, 전이나 찜으로 익혀 먹는 방식이었습니다. 차가운 성질을 지닌 채소이니 한 번 데쳐 익혀 먹는 조리법이, 옛 기록과 자연스레 맞물립니다.

술자리 다음 날 속이 무거울 때 시금치국 한 그릇을 떠올리는 분이 많을 텐데, 술독을 푼다고 본 동의보감의 시선과 우리 식탁의 습관이 오래도록 함께 흘러온 셈입니다.

다만 호미님 가운데 평소 몸이 차거나 설사 기미가 잦으신 분, 혹은 신장이 약하신 분이라면 한꺼번에 많은 양을 드시기보다 적당히 즐기시길 권합니다. 데쳐서 따뜻하게, 그리고 알맞은 양으로. 텃밭에서 막 거둔 시금치 한 단이 식탁에 오르는 동안, 옛 의서의 당부 한 줄을 곁들여 두면 그 푸른 잎이 한층 든든하게 느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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