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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밀기울부터 사워도우까지, 밀이 몸에서 하는 일

가을에 뿌려 겨울을 나는 곡물 — 성분과 작용, 《동의보감》 기록, 먹는 법

9월 말, 토마토와 가지를 걷어 낸 이랑이 하나둘 비어 갑니다. 북반구에서 밀 씨를 뿌리는 때는 10~11월, 바로 다음 달부터입니다. 밀은 가을에 뿌려 어린잎으로 겨울을 나고 이듬해 6월 무렵 거두는 서늘한 기후의 곡물입니다. 자라기 알맞은 온도는 15~22℃입니다. 눈에 덮이면 영하 20℃까지도 견디고, 겨울 추위를 겪어야 봄에 이삭이 팹니다. 중국·인도·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기르고, 미국·프랑스·호주에서도 넓게 재배합니다. 텃밭 한쪽이나 큰 상자 화분에 줄뿌림해 두면 겨울 내내 초록 잎이 빈 흙을 덮습니다.

해를 넘겨 자란 이 곡물을 먹었을 때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낟알을 어디까지 깎아 내고 먹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통밀에 남는 성분

밀 낟알의 겉껍질 부분을 밀기울이라 부릅니다. 흰 밀가루는 밀기울을 벗겨 내고 빻고, 통밀가루는 밀기울째 빻습니다.

반죽을 쫄깃하게 만드는 글루텐(gluten)은 두 가루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글리아딘(gliadin)과 글루테닌(glutenin) 두 단백질이 물과 만나 엉기면서 생기고, 반죽에 탄력과 늘어나는 성질을 줍니다.

통밀가루에는 밀기울에서 온 성분이 더해집니다. 식이섬유의 하나인 아라비노자일란(arabinoxylan)은 물을 많이 머금습니다. 페룰산(ferulic acid)은 식물이 만드는 페놀산의 하나로, 통밀에 남습니다. 마그네슘·셀레늄 같은 무기질도 들어 있지만, 그 양은 밀이 자란 흙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장과 무기질에서 일어나는 일

밀기울 식이섬유를 먹으면 대변 부피와 장 통과 시간이 달라진다는 연구는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물을 머금는 섬유가 장 속 내용물의 양을 늘리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 연구들에는 단서가 붙습니다. 물을 함께 더 마시지 않으면 오히려 속이 더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통밀빵이나 밀기울을 식단에 처음 넣는다면 물잔을 곁에 두고 양을 조금씩 늘려 보세요.

통밀에는 피트산(phytic acid)도 들어 있습니다. 피트산은 무기질과 결합해 잘 녹지 않는 형태로 바꿉니다. 밀 반죽을 젖산균(lactic acid bacteria)으로 오래 발효하면 피트산이 줄고 무기질이 더 잘 녹아 나온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다만 줄어드는 폭은 발효 시간·온도·균종에 따라 크게 다르다고 합니다. 사워도우(sourdough)는 반죽을 젖산균으로 오래 발효해 구운 빵입니다. 오래 발효해도 글루텐은 남으므로, 셀리악병(celiac disease) 환자처럼 글루텐을 피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동의보감》이 적어 둔 소맥

《동의보감》 穀部(곡부)에는 밀이 小麥(소맥)으로 실려 있습니다. 성질은 약간 차다고 하고, 평하다는 설도 함께 실었습니다. 맛은 달고 독이 없다고 했습니다. 밀가루(麪)는 뜨겁고 밀기울(麩)은 차다고 갈라 두었습니다. 껍질은 차고 속은 뜨거우니 탕에 넣을 때는 껍질을 터뜨리지 말고 통째로 쓰라는 손질법도 남겼습니다.

같은 책은 가을에 심은 밀이 겨울에 자라고 봄에 이삭이 패며 여름에 여문다고 적었습니다. 사철 기운을 고루 받는다 하여 오곡 가운데 귀하게 여겼습니다. 따뜻한 땅에서 봄에 심어 여름에 거둔 밀은 기운을 덜 받아 독이 있다며 구분했습니다. 이는 옛 의서의 기록이며 현대 의학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겨울 추위를 거친 밀이 봄에 이삭을 낸다는 관찰은 오늘의 재배 지식과 맞아떨어집니다.

밀을 먹는 법과 곁들임

  • 콩·렌틸과 함께 — 밀 단백질은 라이신(lysine)이 적고, 콩과 렌틸은 라이신이 많습니다. 함께 먹으면 밀에 모자란 라이신이 채워집니다. 한국에서는 여름에 콩을 갈아 낸 국물에 밀국수를 만 콩국수를 먹고, 다른 여러 지역에서는 빵에 렌틸 수프를 곁들입니다.
  • 올리브유·견과와 함께 — 통밀빵을 올리브유에 찍어 먹거나 견과를 반죽에 넣으면 지방이 더해져 거친 결이 부드러워지고 포만감도 오래 갑니다. 견과는 굵게 다져 넣어야 반죽이 덜 끊깁니다.
  • 시간을 들인 발효 — 반죽을 상온에서 12시간, 또는 냉장고에서 하루쯤 두면 집에서도 오래 발효할 수 있습니다. 신맛과 향이 붙고, 피트산이 줄어든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오늘은 통밀가루 반죽 한 덩이를 냉장고에서 하루 발효해 보고, 다음 달 밀 씨를 뿌릴 텃밭 한 줄이나 큰 상자 화분을 먼저 비워 두세요. 6월에 밀을 거둔 뒤 그 밭에 콩을 이어 심으면, 식탁에서 함께 먹기 좋은 두 작물을 한 밭에서 차례로 기를 수 있습니다.

출처: 《동의보감》 穀部 小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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