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가 두 번 내리고 나면 더위지기 잎은 누렇게 말라 손끝에서 바스러집니다. 그런데 줄기는 그대로 서 있습니다. 아래쪽이 단단하게 굳어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에는 그 묵은 줄기 밑에서 새싹이 올라옵니다. 쑥 무리 가운데 이렇게 줄기가 겨울을 나는 종은 드물죠. 늦가을 텃밭에서 더위지기를 알아보는 데는 이 서 있는 줄기 하나면 충분합니다. 여름에 베어 그늘에 말려 둔 다발이 있다면 지금이 꺼내 차로 달이기에 알맞은 때이기도 합니다.
허준이 적은 더위지기, 인진호
1613년에 간행된 《동의보감》 초부(草部)는 이 풀을 인진호(茵蔯蒿)로 올리고 한글 이름을 더위지기라 달아 두었습니다. 성질은 약간 차다고 하면서 서늘하다는 설도 있다고 덧붙였고, 맛은 쓰고 매우며 독이 없다고 하면서 독이 조금 있다는 말도 함께 실었습니다. 한 조문 안에 서로 다른 두 설을 나란히 적었습니다. 생김새는 쑥과 비슷하나 잎이 촘촘하고 가늘며 꽃과 열매가 없다고 했고, 곳곳에 난다고 했습니다. 이름의 유래도 밝혔습니다. 가을 뒤에 잎은 마르되 줄기는 겨울에도 죽지 않고 묵은 싹에서 다시 나기 때문에 인진호라 부른다는 것입니다. 거두는 법은 음력 5월과 7월에 줄기와 잎을 베어 그늘에 말리되 불을 쬐지 말고, 뿌리와 흙을 떼어 잘게 썰어 쓰라고 적었습니다. 17세기 의서의 기록이라 성질과 독성에 관한 이 서술은 오늘의 의학 판단과 같지 않습니다. 원문과 풀이는 동의보감 인진호 항목에 옮겨 두었습니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겹치는 곳과 어긋나는 곳
겹치는 대목부터 보겠습니다. 더위지기(Artemisia gmelinii)는 식물학에서도 줄기 아래쪽이 굳어 겨울을 나는 반관목으로 다루니, 허준이 본 죽지 않는 줄기와 들어맞습니다. 한국·중국·몽골·시베리아의 마른 산지에 널리 자라는 점도 곳곳에 난다는 서술과 같습니다. 쓴맛과 매운 향도 그대로입니다. 작물 도감은 그 향을 정유 성분으로, 쓴맛과 색을 플라보노이드(flavonoid)로 설명합니다. 어긋나는 대목은 꽃입니다. 더위지기는 늦여름에 아주 작은 꽃을 촘촘히 피우기 때문에, 꽃과 열매가 없다는 서술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꽃을 놓친 기록으로 읽힙니다.
성분 이야기에는 이름 문제가 끼어듭니다. 한국 약재 유통 자료를 보면 인진쑥이라는 이름으로 더위지기와 사철쑥(Artemisia capillaris) 두 종이 함께 팔리고, 한국의 약전이 인진호의 기원 식물로 적는 쪽은 사철쑥입니다. 작물 도감이 인용한 성분 분석에서 쿠마린(coumarin) 계열의 스코파론(scoparone)이 분리된 재료도 사철쑥입니다. 더위지기를 따로 분석한 성분 수치는 도감에 없으므로, 사철쑥 분석을 더위지기 것으로 옮겨 읽으면 안 됩니다. 두 종이 한 이름으로 팔리는 것은 유통에서 생긴 일이고, 둘 사이에 우열을 매긴 자료는 없습니다. 텃밭에서 기르는 쪽은 줄기가 겨울을 나는 더위지기이고, 그 점에서는 허준의 기록과 지금의 식물이 같은 풀을 가리킵니다.
봄에 뿌리고, 여름에 베고, 줄기는 둡니다
씨는 북반구 기준 3~4월에 뿌립니다. 더위지기는 양지바른 비탈이나 물이 잘 빠지는 마른 땅에서 자라는 풀이니, 텃밭에서는 물이 고이는 자리를 피해 햇빛이 오래 드는 쪽에 두세요. 베는 때는 꽃이 피기 전, 줄기와 잎이 가장 연한 6~7월입니다. 허준이 적은 음력 5월과 7월도 요즘 달력으로는 이 무렵에서 한여름 사이에 듭니다. 베어 낸 다발은 묶어서 바람이 통하는 그늘에 걸어 말리고, 불기나 직사광선에는 대지 않습니다. 조문의 불을 쬐지 말라는 말과 같은 요령으로 하면 됩니다. 가을에 잎이 마르면 줄기는 자르지 말고 그대로 두세요. 이듬해 봄에 묵은 줄기 밑에서 새싹이 올라오고, 한번 자리 잡으면 몇 해를 같은 자리에서 거둘 수 있습니다. 파종 달력과 성분표는 더위지기 작물 도감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연하게 달여 마시는 법
말린 줄기와 잎 한 자밤, 엄지와 두 손가락으로 한 번 집어 올리는 양을 물 1리터에 넣고 5분쯤 끓인 뒤 걸러 마십니다. 오래 끓일수록 쓴맛이 급격히 올라오니 시간을 넘기지 마세요. 식혀서 냉장하고 이틀 안에 마시면 됩니다. 쓴맛이 걸리면 씨를 뺀 대추 두세 알을 함께 넣어 달여 보세요. 오래 쓰여 온 방법으로, 단맛이 더해져 마시기가 수월해집니다. 처음 마셔 보는 분에게는 볶은 보리와 섞는 쪽이 더 편합니다. 보리를 넉넉히 잡고 쑥은 조금만 넣어 함께 달이면 구수한 맛이 먼저 느껴지고 쑥의 쓴맛은 약해집니다.
한국 약재 시장에서 인진쑥이라고 적힌 봉지를 사면 더위지기인지 사철쑥인지 봉지만 보고는 알기 어렵습니다. 직접 기른 풀에는 그 물음이 없습니다. 겨울 내내 밭에 서 있던 줄기를 본 사람은 어느 쪽인지 묻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