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반구 기준 10월, 텃밭 울타리 너머 비탈에서 칡 잎이 누렇게 바래기 시작합니다. 덥고 습한 여름에 빠르게 뻗던 덩굴이 자라기를 멈추고, 땅속 뿌리에 녹말이 쌓이는 때입니다. 칡은 콩과에 속하는 덩굴나무이고, 먹는 부위는 땅속으로 굵게 뻗은 뿌리입니다. 이 뿌리를 달이면 차가 되고, 녹말을 가라앉혀 모으면 갈분(칡뿌리 녹말)이 됩니다. 차와 갈분은 어울리는 재료가 서로 다릅니다.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캐는 뿌리
칡뿌리는 잎이 진 뒤부터 이른 봄까지, 북반구 기준 11월에서 이듬해 2월 사이에 캡니다. 이 무렵 뿌리에 녹말이 가장 많이 쌓인다고 전해지고, 갈분을 이 철에 내려 온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칡뿌리에서 먼저 꼽을 성분은 녹말입니다. 녹말은 소화되면서 포도당으로 나뉘어 에너지로 쓰입니다. 뿌리에는 식이섬유도 들어 있어, 날로 씹어 보면 단맛이 조금 우러난 뒤에도 질긴 섬유가 입에 남습니다. 여기에 푸에라린을 비롯해 다이드제인·다이드진 같은 이소플라본 계열 화합물이 뿌리에서 분리된다는 분석이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부위와 캐는 시기에 따라 함량이 달라진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다만 이런 분석은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를 밝힌 것이고, 먹었을 때 몸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까지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
칡은 생육 적온이 20~30℃이고, 볕이 잘 드는 남향 비탈에서 잘 큽니다. 중국에서 많이 나고 한국·일본·러시아에도 자생합니다. 북반구 기준 3~4월에 뿌리를 나눠 심을 수 있지만, 뿌리가 1m 넘게 내려가 캐기 어렵고 덩굴이 빨리 번집니다. 북아메리카 남동부처럼 칡이 퍼져 제거 대상이 된 지역도 있으니, 심기 전에 사는 곳의 규정을 확인해 보세요. 요리에는 말린 칡이나 갈분을 구해 쓰는 편이 수월합니다.
칡차에는 대추와 꿀, 마지막에 생강
칡만 달이면 쓰고 떫은 뒷맛이 남습니다. 달일 때 대추를 함께 넣고 꿀로 마무리하면 이 뒷맛이 줄어듭니다. 말린 칡은 얇게 저민 것을 고르세요. 얇을수록 빨리 우러납니다.
- 물 1L에 얇게 저민 말린 칡 20g, 씨를 뺀 대추 3~4알을 넣고 끓입니다.
- 끓어오르면 약한 불로 줄여 30분 남짓 뭉근히 달입니다. 세게 끓이는 것보다 향이 더 남습니다.
- 불을 끄기 직전에 얇게 썬 생강 두어 쪽을 넣습니다. 매운 향이 더해져 마시기 수월해집니다. 오래 끓이면 매운맛이 세지니 넣은 뒤 곧 불을 끕니다.
- 잔에 따른 뒤 꿀을 조금씩 풀어 단맛을 맞춥니다.
칡의 양과 달이는 시간은 이 정도에서 시작해 입맛에 맞게 늘리거나 줄여 보세요.
갈분에는 메밀가루·밀가루, 그리고 꿀
갈분은 캔 뿌리를 찧어 즙을 짜고, 이 즙을 물에 풀어 가라앉히기를 여러 번 되풀이한 뒤 바닥에 남은 앙금만 모아 말린 것입니다. 짜고 남은 섬유 찌꺼기는 이 과정에서 걸러지므로, 갈분은 뿌리보다 섬유질이 적고 녹말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갈분은 그 자체로는 잘 뭉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수를 뽑을 때는 메밀가루나 밀가루를 섞어 반죽합니다. 메밀가루를 섞으면 메밀의 구수한 향이 더해지고, 밀가루를 섞으면 밀의 글루텐이 반죽을 뭉치게 해 면이 덜 끊어집니다. 삶은 갈분국수는 찬물에 헹궈 차게 먹거나 따뜻한 국물에 넣어 먹어 보세요.
다식(곡물가루나 녹말을 꿀로 반죽해 무늬 판에 찍어 낸 한국 과자)도 갈분으로 만듭니다. 갈분을 꿀로 개어 판에 박아 내면 됩니다. 뿌리를 달여 마시는 칡차와는 맛도 먹는 방식도 다른 음식이 됩니다.
《동의보감》이 적은 갈근
《동의보감》(1613년에 펴낸 한국 의서) 초부(草部)에는 칡뿌리가 갈근(葛根)이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습니다. 성질은 평하다고 하면서 냉하다는 말도 있다고 덧붙였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고 적었습니다. 녹곽(鹿藿)이라는 딴 이름도 함께 실었습니다. 음력 5월 5일에 캐서 볕에 말린다고 적었고, 땅속 깊이 든 뿌리를 좋은 것으로 쳤습니다.
이 날짜는 약재로 말릴 뿌리를 두고 적은 것으로 보이며, 갈분을 내리려고 늦가을부터 이른 봄 사이에 캐는 뿌리와는 철이 다릅니다. 옛 의서의 서술은 오늘날의 판단과 다르니, 칡차와 갈분은 약으로 여기기보다 제철 음식으로 즐기세요.
출처: 《동의보감》 草部 葛根
오늘 장을 볼 때 얇게 저민 말린 칡 20g과 대추 몇 알을 챙겨 칡차를 달여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