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반구의 10월, 텃밭 울타리 너머 산기슭에서 칡잎이 누렇게 바래기 시작합니다. 늦여름에 자주색 꽃을 달던 덩굴은 서리가 내리면 잎을 떨굽니다. 칡(Pueraria lobata)은 한국·중국·일본의 산과 들에서 흔히 자라는 콩과 덩굴식물이고, 땅속의 굵은 뿌리는 칡차와 갈분국수가 되어 식탁에 오릅니다. 잎이 지는 이 무렵부터 뿌리를 캐는 철이 시작됩니다.
《동의보감》이 적은 갈근
《동의보감》은 칡뿌리를 草部에 갈근(葛根)이라는 이름으로 실었습니다. 원문에는 「性平(一云冷) 味甘 無毒」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성질이 평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는 뜻이고, 一云冷은 냉하다는 말도 있다고 덧붙인 것입니다. 산에서 나고 곳곳에 있다고 하였으며, 녹곽(鹿藿)이라는 딴 이름도 함께 적었습니다.
캐는 때와 고르는 법도 남겼습니다. 음력 5월 5일(양력으로는 대개 5월 말에서 6월 사이)에 뿌리를 캐어 볕에 말리고, 땅속 깊이 든 것을 좋은 것으로 쳤습니다. 꽃은 갈화(葛花)라는 이름으로 따로 실었습니다. 원문과 풀이는 호미클럽 동의보감의 갈근 풀이에서 이어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내용은 옛 의서가 남긴 서술이며, 오늘의 의학 판단과는 다릅니다.
성분으로 견주어 보기
여러 연구진이 칡뿌리에서 푸에라린(puerarin)을 비롯한 이소플라본(isoflavone) 계열 화합물을 분리해 보고했습니다. 푸에라린은 칡뿌리를 대표하는 이소플라본 배당체이고, 함께 나오는 다이드제인(daidzein)·다이드진(daidzin)은 콩과 식물에서 흔히 보고되는 성분입니다. 뿌리에는 이 밖에 저장 탄수화물인 녹말과, 씹어도 끝까지 남는 질긴 식이섬유가 들어 있습니다.
옛 기록과 겹치는 관찰도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땅속 깊이 든 뿌리를 좋게 보았고, 오늘의 연구진은 부위와 채취 시기에 따라 성분 함량이 달라진다는 결과를 함께 실었습니다. 어디를 언제 캐느냐에 따라 뿌리가 달라진다고 본 점은 두 기록이 같습니다.
다른 점도 뚜렷합니다. 옛 기록은 성질과 맛으로 뿌리를 설명했고, 오늘의 분석은 뿌리에 든 성분의 이름과 함량을 따집니다. 그 성분이 몸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이 분석들이 단정하지 않습니다. 캐는 철도 다릅니다. 《동의보감》은 초여름에 캔 뿌리를 말려 약재로 썼고, 갈분을 내리는 집에서는 잎이 진 뒤부터 이른 봄까지를 캐는 철로 삼아 왔습니다. 그 철에 뿌리의 녹말이 가장 많다고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말려 쓰는 뿌리와 녹말을 얻는 뿌리를 서로 다른 때에 캔 것입니다.
먹는 형태에 따라 몸에 들어오는 성분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칡차는 뿌리를 달인 물이라 푸에라린처럼 물에 녹는 성분이 우러날 것입니다. 반면에 갈분은 물에 여러 번 우려 앉힌 녹말이라, 물에 녹는 성분은 웃물과 함께 상당 부분 빠지고 주로 탄수화물이 남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복용 중인 약이 있거나 이소플라본 보충제를 따로 챙기고 있다면, 진하게 달인 칡즙을 날마다 마시기 전에 의사나 약사와 상의해 보세요.
텃밭에 들이기 전에
칡은 북반구 기준 3~4월에 심습니다. 다만 덩굴은 여름 동안 빠르게 뻗어 울타리와 옆 작물을 덮고, 땅에 닿은 줄기 마디에서 새 뿌리를 내립니다. 원산지인 동아시아 밖에서는 북아메리카 남동부를 비롯해 칡을 침입 외래종으로 관리하는 지역이 여럿 있습니다. 사는 곳에서 칡을 심어도 되는지 먼저 알아보세요.
기르기로 정했다면 맨땅보다 바닥이 막힌 큰 화분이나 둘레를 막은 상자 텃밭에 심어 보세요. 덩굴은 지지대 하나로만 올리고, 옆으로 번지는 줄기는 보이는 대로 잘라 주세요. 꽃이 지고 꼬투리가 맺히면 씨가 떨어지기 전에 따 내는 편이 안전합니다. 뿌리가 캘 만큼 굵어지기까지는 보통 여러 해가 걸립니다.
거두는 때는 북반구 기준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입니다. 잎이 다 진 뒤 뿌리를 캐어 흙을 씻고, 차로 쓸 것은 얇게 저며 볕에 말려 두세요. 기르기가 부담스럽다면 말린 칡이나 갈분을 구해 써도 좋습니다.
칡차와 갈분으로 먹기
칡차는 얇게 저며 말린 칡을 쓰면 빨리 우러납니다. 대추를 함께 넣어 약한 불에 뭉근히 달이고, 꿀로 마무리하면 쓰고 떫은 뒷맛이 줄어듭니다. 생강 두어 쪽을 더하면 매운 향이 붙어 마시기 수월해집니다. 생강은 오래 끓일수록 매운맛이 세지므로 마지막에 넣고 불을 끄세요.
갈분은 캔 뿌리를 찧어 물에 우리고, 가라앉은 앙금을 모아 말린 녹말입니다. 그 자체로는 잘 뭉치지 않아서 국수를 뽑을 때는 메밀가루나 밀가루를 섞습니다. 다식(가루를 꿀로 반죽해 틀에 찍어 낸 한국 과자)을 만들 때는 갈분에 꿀을 개어 다식판에 박아 냅니다.
오늘은 칡 작물 도감에서 심는 달과 거두는 달을 확인하고, 말린 칡 한 봉지로 대추 칡차부터 달여 보세요.
출처: 허준, 《동의보감》 탕액편 草部 「갈근」(1613년 간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