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조각을 천천히 녹여 먹으면 단맛 뒤로 과일이나 꽃 향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이 향은 카카오 콩의 품종과 발효 과정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그런데 향이 좋은 토종 품종은 수확량이 적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그래서 농가는 열매를 많이 맺는 상업 품종을 고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페루 북부 소농의 밭에서 나온 연구 결과는 이런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흰 씨앗에서 이름을 얻은 페루 토종 카카오
연구진이 살핀 품종은 블랑코 데 피우라(Blanco de Piura)입니다. 페루 북부 피우라 지역에서 오래 자라 온 토종 카카오입니다. '블랑코'는 스페인어로 '흰색'을 뜻합니다. 꼬투리 속 씨앗 가운데 자줏빛이 옅고 흰빛을 띠는 것이 많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맛과 향이 뛰어난 파인 플레이버(fine flavor) 카카오로 이름이 나서 고급 초콜릿 원료로 쓰입니다.
카카오나무는 적도 남북으로 위도 20도 안쪽에서 자랍니다. 이 지역은 기온이 대체로 18~32℃를 오가고 서리가 내리지 않는 덥고 습한 곳입니다. 코트디부아르·가나·인도네시아·에콰도르·페루 등에서 많이 기릅니다. 추위에 약해서 온대 지역의 베란다나 텃밭에서는 열매까지 보기가 어렵습니다.
수확량은 나무 돌보기에 달렸습니다
이 연구는 바이오버시티 인터내셔널·국제열대농업센터 연합(Alliance of Bioversity International and CIAT)과 독일 괴팅겐대학교가 이끌었습니다. 노란디노 농업협동조합(Cooperativa Agraria Norandino)도 함께했습니다. 연구진은 페루 북부 소농의 밭에서 블랑코 데 피우라를 얼마나 거둘 수 있는지 살폈습니다.
연구진은 이 품종을 1헥타르(10,000㎡)에서 마른 콩으로 평균 1,200~1,500kg까지 거둘 수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중남미에서 널리 심는 상업 품종과 견줄 만한 양입니다. 맛을 챙기려면 수확량을 줄여야 한다는 오랜 생각과 다른 결과입니다.
다만 연구진은 나무를 잘 관리해야 이만큼 거둘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품종이라도 어떻게 돌보느냐에 따라 거두는 양이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카카오 농사에서 흔히 하는 관리는 이렇습니다. 가지를 쳐서 나무 높이와 햇빛 드는 정도를 맞춥니다. 그늘나무를 심어 볕을 조절하고, 병든 꼬투리는 일찍 따냅니다. 이번 자료에는 작업마다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관리가 수확을 가장 많이 늘렸는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맛과 향이 좋은 카카오는 일반 카카오보다 값을 더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결과로 소농이 토종 나무를 계속 기를 이유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카카오를 먹을 때 알아 둘 것
카카오 콩에 든 성분 가운데 눈여겨볼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폴리페놀의 한 종류인 플라바놀(flavanol)입니다. 다른 하나는 카페인처럼 가볍게 잠을 깨우는 테오브로민(theobromine)입니다. 코코아 플라바놀이 혈관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가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먹는 양과 형태에 따라 결과가 달라서 아직 효과를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플라바놀은 발효·로스팅·알칼리 처리를 거치면서 줄어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초콜릿은 설탕과 지방이 함께 들어간 가공식품입니다. 카카오 함량이 높고 첨가물이 적은 제품을 조금씩 즐기면 몸에 부담이 덜합니다. 카카오닙스(볶은 카카오 콩을 잘게 부순 것)는 달지 않습니다. 요거트나 텃밭에서 딴 딸기·블루베리 위에 10g쯤 뿌려 먹어도 좋습니다. 테오브로민은 개와 고양이에게 해롭습니다. 초콜릿과 카카오닙스는 반려동물이 닿지 않는 곳에 두세요.
다음에 초콜릿을 고를 때는 포장 뒷면에서 산지와 품종 표기를 찾아보세요. 페루산이나 블랑코 데 피우라라는 이름이 있으면 한 조각을 천천히 녹이며 향을 느껴 보세요.
참고: 바이오버시티 인터내셔널·국제열대농업센터 연합, 괴팅겐대학교, 노란디노 농업협동조합 — 페루 북부 블랑코 데 피우라 카카오 수확량 연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