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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아주까리, 씨는 두고 잎을 거둡니다 — 《동의보감》 비마자와 오늘의 부엌

옛 의서가 적어 둔 성질과 손질, 그리고 잎을 삶아 말려 겨울까지 두는 법

북반구 기준 8월 말, 텃밭 한쪽의 아주까리는 잘 자란 포기가 사람 키에 가깝게 서 있고 잎은 어른 손보다 훨씬 넓게 벌어집니다. 이맘때 연한 잎을 따 삶아 말려 두면 겨울 내내 나물 한 접시가 나옵니다. 씨는 아직 여물지 않았고, 여물어도 부엌으로 들이지 않습니다.

아주까리는 피마자라고도 부르며 학명은 Ricinus communis입니다. 북반구 기준 4~5월에 씨를 넣고 7~9월에 잎을 거둡니다.

《동의보감》이 적은 비마자

《동의보감》 초부(草部)에는 이 작물이 비마자(萆麻子)로 실려 있고, 우리말 이름을 '아주까리'로 적었습니다. 성질이 평하고 맛은 달면서 매우며 독이 조금 있다고 했습니다. 잎이 삼을 닮았으나 몹시 크고, 씨의 생김새가 소에 붙는 진드기와 비슷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명도 함께 남겼습니다. 손질법까지 적혀 있습니다. 날로 쓰지 않고 소금물에 삶아 껍질을 벗긴 뒤 알맹이만 썼습니다. 원문과 풀이는 《동의보감》 비마자 항목에서 읽어 볼 수 있습니다.

이 서술은 옛 의서가 남긴 기록입니다. 그 시대의 쓰임을 오늘의 처방으로 옮겨 읽지는 않습니다. 다만 독이 조금 있다고 밝히고 손질을 따로 적어 둔 대목은 오늘의 정리와 겹칩니다.

씨앗과 잎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아주까리 씨에서는 리신(ricin)이라는 단백질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적은 양으로도 중독을 일으킨 사례가 여러 나라에서 보고되었습니다. 그래서 씨앗은 어떤 손질을 거쳐도 식품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삶아도, 껍질을 벗겨도 같습니다.

먹는 부위는 잎입니다. 잎을 삶아 우려낸 뒤 말려 두었다가 겨우내 불려 먹는 방식은 오래 이어져 온 손질입니다. 씨는 남기고 잎만 거둡니다.

오늘의 성분과 견주면

아주까리에서 보고되는 성분은 부위마다 다릅니다. 리신은 씨앗에 든 단백질 독이고, 리시놀레산(ricinoleic acid)은 씨에서 짜낸 기름을 이루는 지방산입니다. 리시닌(ricinine)이라는 알칼로이드도 보고됩니다. 잎을 말려 먹을 때 몸에 닿는 것은 질긴 씹는 맛을 이루는 식이섬유입니다.

옛 기록과 오늘의 정리가 겹치는 대목은 '독이 조금 있다'와 '날로 쓰지 않는다'입니다. 갈리는 곳은 씨앗입니다. 옛 의서는 소금물에 삶아 껍질을 벗겨 쓰는 법을 적었지만, 오늘 부엌에서 씨앗은 아예 다루지 않습니다.

지금 기르고, 지금 말립니다

기르기는 까다롭지 않습니다. 볕이 잘 드는 곳에 심으면 여름 내 잎이 계속 올라옵니다. 포기가 크게 자라니 이웃 작물과 간격을 넉넉히 두세요. 꼬투리가 달리기 시작하면 아이나 반려동물이 닿지 않도록 미리 따서 치워 주세요. 심는 달과 거두는 달은 아주까리 작물 도감에서 확인해 보세요.

손질은 오늘 시작할 수 있습니다.

  • 연한 잎을 따서 끓는 물에 부드러워질 만큼만 삶습니다.
  • 삶은 물은 버리고 찬물에 여러 번 헹굽니다. 이 과정을 건너뛰지 마세요.
  • 물기를 짜서 볕과 바람이 드는 곳에 널어 바싹 말립니다.

먹을 때는 하룻밤 불려 다시 삶습니다. 들기름(들깨로 짠 기름)에 볶으면 마른 잎의 거친 맛이 부드러워집니다. 기름을 두르고 잎을 뒤적이다 물을 조금 붓고 뚜껑을 덮어 뜸을 들여 보세요. 간은 소금보다 국간장(콩으로 담근 국물용 간장)으로 하고 다진 마늘을 넣어 조물조물 무친 뒤 볶으면 빛깔이 탁해지지 않습니다.

말려 둔 피마자잎은 정월대보름(음력 첫 보름) 나물상에 오르는 묵나물, 곧 말렸다가 불려 먹는 나물의 하나입니다. 다섯 가지 곡식을 섞어 지은 오곡밥을 얹어 쌈(잎에 싸 먹는 법)처럼 싸 먹는 방식이 오래 이어졌습니다.

오늘 텃밭에 나가면 아주까리 잎 가운데 연한 것부터 한 소쿠리 따 보세요. 삶고 헹구고 너는 일까지 하루면 끝납니다. 씨는 손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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