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텃밭은 거두는 일과 비우는 일이 겹칩니다. 들깨는 아직 여물어 가고, 첫 서리 전에 걷어 낼 이랑은 벌써 정해져 있습니다. 이맘때 장을 보러 가면 견과 코너에 자잘한 연둣빛 알맹이를 담은 봉지가 놓여 있습니다. 헴프시드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이 알맹이는 삼씨에서 단단한 겉껍질을 벗겨 낸 것입니다. 밭에서는 볼 일이 없는데 식탁에는 올라오는 작물, 삼입니다.
텃밭에서 기르는 작물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삼을 심으려면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은 대마초와 그 수지를 규제하면서 종자와 뿌리, 성숙한 줄기와 그 제품은 규제 대상에서 빼 두었습니다. 껍질을 벗긴 씨가 식품으로 유통되는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라마다 규정이 다르니 사는 곳의 법부터 확인해 보세요.
기르는 조건만 놓고 보면 여름 한 철에 자라는 한해살이풀입니다. 8~10℃에서 싹이 트고 20~25℃에서 곧게 자라며 첫 서리에 죽습니다. 잘 자라는 온도는 18~27℃입니다. 해가 짧아지는 늦여름에 꽃이 피는 단일성 작물이라, 같은 품종이라도 위도가 달라지면 꽃 피는 때와 키가 크게 달라집니다. 북반구 기준 4~5월에 씨를 뿌리면 8~9월에 거둡니다. 많이 기르는 나라는 중국과 프랑스이고, 캐나다와 미국도 주요 산지입니다. 한국은 삼베를 짜던 옛 산지입니다.
씨 안에 든 것
삼씨의 저장 단백질은 에데스틴(edestin)입니다. 씨가 싹을 틔울 때 쓰려고 모아 둔 단백질이고, 껍질을 벗긴 알맹이를 먹을 때 함께 들어옵니다. 지방은 대부분이 불포화지방산입니다. 기름의 지방산을 분석해 보면 리놀레산이 가장 많고, 알파리놀렌산과 감마리놀렌산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감마리놀렌산은 오메가-6 계열 지방산의 하나입니다. 무기질로는 마그네슘이 들어 있습니다.
다만 이 분석은 성분이 어떻게 섞여 있는지를 잰 것이며, 병을 막거나 낫게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불포화지방산이 많은 만큼 산화도 빠릅니다. 실제로 먹을 때 챙길 것은 성분표보다 이쪽입니다. 상한 기름은 고소한 맛부터 잃습니다.
옛 의서가 적어 둔 마자
《동의보감》 곡부(穀部)에는 마자(麻子)로 실려 있고, 우리말 이름을 '삼ᄡᅵ'로 적었습니다. 성질이 평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했습니다. 차다고 적은 데도 있습니다. 이른 봄에 심은 것을 춘마자라 하여 알이 작고 독이 있다고 보았고, 늦봄에 심은 것을 추마자라 하여 약에 넣기 좋다고 갈라 보았습니다.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는 금기도 붙여 두었습니다. 옛 기록이며 오늘날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같은 항목에 손질법도 남아 있습니다. 껍질을 벗기기가 매우 어려워, 물에 이삼 일 담가 껍질이 터지면 볕에 말린 뒤 새 기와 위에서 비벼 알맹이만 골라 썼습니다. 지금 봉지에 담겨 나오는 알맹이는 그 수고를 기계가 대신한 것입니다. 껍질을 벗겨야 먹을 수 있다는 사정은 몇백 년 동안 그대로입니다.
먹는 법 — 볶지 말고 그대로
껍질 벗긴 삼씨는 볶지 않고 그대로 뿌려 먹습니다. 잣과 비슷한 고소한 맛이 나고 알맹이가 물러서 씹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 요거트나 샐러드에 한 숟갈 남짓 뿌려 보세요. 열을 가하지 않는 쪽이 잘 맞습니다.
- 미숫가루나 스무디에 갈아 넣으면 고소한 맛이 돌고 알갱이가 따로 씹히지 않습니다. 갈아 둔 것은 산화가 빠르니 그때그때 갈아 쓰세요.
- 삼씨유는 발연점이 낮아 볶음에 쓰지 않습니다. 드레싱이나 무침에 넣어 보세요. 병을 딴 뒤에는 냉장고에 넣고 몇 달 안에 씁니다.
봉지를 뜯은 알맹이도 같습니다. 상온에 두지 말고 냉장고에 옮겨 두세요. 옛 의서가 많이 먹지 말라고 적어 둔 대목까지 생각하면, 하루 한 숟갈 남짓으로 충분합니다.
오늘 저녁 요거트 위에 한 숟갈 뿌려 보세요. 밭에 심지 못하는 작물이라도 씨는 이렇게 먹을 수 있습니다. 남은 봉지는 잊지 말고 냉장고에 넣어 두세요.
출처: 《동의보감》 곡부 마자(麻子) ·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