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를 마친 밭 가장자리를 삽으로 뒤집으면 하얗고 마디진 뿌리줄기가 길게 이어져 나옵니다. 흙을 털고 한 토막 씹어 보면 은근한 단맛이 돕니다. 봄이면 볕바른 둔덕을 흰 이삭으로 덮는 풀, 띠(Imperata cylindrica)의 뿌리입니다. 텃밭을 가꾸는 사람에게는 캐내도 이듬해 다시 올라오는 성가신 풀이기도 합니다. 옛 의서는 이 뿌리를 약재 항목에 따로 실어 두었습니다.
《동의보감》이 적은 띠뿌리
《동의보감》은 초부(草部, 풀 종류를 모은 부분)에 모근(茅根)을 싣고, 한국어 이름을 '띠뿌리'라고 적었습니다. 성질은 차다고 하면서 서늘하다는 말도 있다고 덧붙였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백모근(白茅根)이며 곳곳에 자란다고 산지도 남겼습니다. 손질은 음력 유월에 뿌리를 캐서 볕에 말린다고 했고, 같은 항목에 꽃인 모화와 갓 돋은 뾰족한 순인 모침을 나누어 실었습니다.
이 서술은 17세기 초 의서의 분류를 따른 것이라 지금의 의학 판단과는 다릅니다. '차다·달다'는 옛 의서가 약재를 나누던 기준이고, 띠뿌리가 특정 병을 고친다는 근거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원문과 풀이는 호미클럽 동의보감의 띠뿌리 항목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요즘 백모근차(띠뿌리를 달인 차)로 마시는 것도 이 뿌리입니다.
요즘 분석과 견주어 보면
단맛에서는 옛 기록과 요즘 연구가 겹칩니다. 《동의보감》은 맛이 달다고 적었고, 성분 연구는 뿌리줄기에 저장된 당류에서 그 단맛이 난다고 봅니다. 곳곳에 있다는 산지 기록도 지금의 생태 기록과 들어맞습니다. 띠는 뿌리줄기로 빠르게 퍼져 세계 여러 지역에서 관리가 까다로운 잡초로 다뤄지고, 미국에서는 연방 유해잡초 목록에 올라 있습니다.
옛 기록과 견주기 어려운 대목도 있습니다. 띠의 뿌리줄기에서는 트리테르펜 계열 화합물이 분리되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다만 이 보고는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를 다룬 조성 분석이며, 그 성분이 몸에서 하는 일을 밝힌 연구는 아닙니다. 그 밖에 식물에 흔한 무기질인 칼륨과 질긴 결을 이루는 식이섬유가 들어 있습니다. 성질이 차다는 옛 분류는 이런 성분 목록으로 옮겨 적을 수 없습니다.
텃밭에서 기를 때는 퍼짐부터 막습니다
띠는 볕이 잘 드는 둔덕에서 잘 자랍니다. 북반구 기준으로 3~4월에 심고, 4~5월과 7월에 거둡니다. 음력 유월은 양력으로 대개 7월 무렵이라, 《동의보감》이 뿌리를 캐던 때와 여름 수확 시기가 맞습니다. 남반구라면 각 시기를 여섯 달 늦춰 잡으세요. 심고 거두는 달은 작물도감의 띠 항목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어 퍼지므로 맨땅에 심지 말고, 바닥이 막힌 큰 화분이나 상자에 심어 보세요. 미국처럼 유해잡초로 정해 둔 곳에서는 심거나 옮기는 일이 금지될 수 있으니 사는 곳의 규정을 먼저 확인하세요. 이미 밭에 퍼져 있다면 캐낸 뿌리줄기를 모아 두세요. 흙을 씻어 내고 볕에 바싹 말리면 《동의보감》이 적은 손질과 같습니다. 다만 길가나 농약을 뿌린 땅에서 캔 것은 먹지 마세요.
달여서 연하게 마시는 법
말린 뿌리줄기는 물에 달여 마십니다. 함께 달이기 좋은 재료와 마시는 요령을 적어 둡니다.
- 대추와 함께: 말린 뿌리줄기에 대추 몇 알을 넣고 달이면 흙내가 줄고 단맛이 붙습니다. 물을 넉넉히 잡고 약한 불로 달여 보세요.
- 볶은 보리·현미와 함께: 볶은 곡물을 더하면 구수한 맛이 나서 물처럼 연하게 마시기 편합니다. 곡물이 들어가면 쉽게 상하니 달인 날 안에 드세요.
- 차게 식혀서: 달인 물을 식혀 차게 두면 여름에 마시기 좋습니다. 단맛이 약하게 있어 다른 것을 타지 않아도 됩니다. 냉장고에 두고 그날 안에 드세요.
띠뿌리차는 옛 기록이 남은 뿌리를 맛으로 즐기는 음료로 드세요. 약을 먹는 중이거나 지병이 있다면 마시기 전에 의사와 상의하세요.
오늘 밭을 정리하다 하얀 뿌리줄기가 나오면 한 줌 씻어서 볕에 널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