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님의 텃밭 한 귀퉁이에서
땅콩은 다른 작물과 달리 꽃이 진 자리에서 꽃대가 땅속으로 파고들어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낙화생(落花生), 꽃이 떨어져 생긴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여름 내내 노란 꽃을 보다가 가을에 포기째 뽑아 보면 흙 속에 알알이 매달린 꼬투리가 따라 올라오는데, 직접 길러 본 호미님이라면 이 순간의 흙냄새를 잊기 어려우실 겁니다.
볶아서 한 줌 집어 먹기도 하고, 삶아서 말랑한 식감을 즐기기도 하는 땅콩은 우리 식탁에서 늘 곁에 있는 군것질이자 반찬입니다. 명절 상에도 오르고, 술자리 옆에도 놓이고, 아이 간식으로도 빠지지 않으니 이만큼 우리 생활에 깊이 들어온 열매도 드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익숙한 작물일수록 정작 그 성질을 찬찬히 들여다본 적은 의외로 드뭅니다. 이 익숙한 열매를 옛 의서는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동의보감은 이렇게 보았습니다
본초에서 낙화생(落花生), 곧 땅콩은 맛이 달고 성질이 평하다고 보았습니다. 성질이 평하다는 말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 가려 먹기에 비교적 부담이 적은 식재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단맛은 예부터 비위(脾胃)를 어루만지는 맛으로 여겨졌으니, 땅콩의 성질과 맛이 그 쓰임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주된 쓰임으로는 두 가지가 전해집니다. 하나는 비위(脾胃)를 든든히 해 소화를 돕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폐를 부드럽게 하여 마른기침과 가래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비위란 음식을 받아들이고 삭여 기운으로 바꾸는 우리 몸의 살림터쯤으로 헤아리시면 됩니다. 속이 허하고 입맛이 없을 때 기력을 채워 주는 자양 식품으로, 또 목이 칼칼하고 마른기침이 날 때 폐를 적셔 주는 음식으로 썼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든든히 채우는 쪽과 부드럽게 적셔 주는 쪽, 이 두 결이 한 알의 땅콩 안에 함께 담겨 있다고 본 셈입니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일 점이 있습니다. 땅콩은 본래 남미가 원산이라 비교적 늦게 동아시아에 들어온 작물입니다. 그래서 오래된 고전 의서에 남은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옛사람들이 땅콩을 두고 길게 논하지 못한 것은 효능이 적어서가 아니라, 만난 시기 자체가 늦었던 까닭으로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영양학과 견주면
옛 의서가 비위를 돕고 폐를 부드럽게 하는 자양 식품으로 보았던 땅콩을, 현대 영양학은 또 다른 언어로 풀어냅니다.
땅콩에는 올레산과 리놀레산 같은 불포화지방이 많고, 비타민E와 식물성 단백질도 풍부합니다. 그래서 견과류 섭취와 심혈관 건강을 다룬 연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력을 채워 주는 자양 식품'이라는 옛 시선과 '좋은 지방과 단백질이 든 열매'라는 오늘의 설명이, 표현은 달라도 한 점에서 만나는 듯합니다.
물론 견과류 연구가 곧 어떤 효과를 보장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저 옛 기록과 오늘의 관점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나란히 놓인다는 정도로 받아들이시면 충분합니다. 한 가지 분명히 짚어 둘 점은, 땅콩이 대표적인 알레르기 식품이라는 사실입니다. 체질에 따라 적은 양으로도 반응이 나타날 수 있으니, 이 부분만큼은 가볍게 넘기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텃밭에서 식탁으로
직접 거둔 땅콩은 흙을 털고 잘 말려 두면 오래 두고 즐기실 수 있습니다. 볶으면 고소함이 살고, 삶으면 부드러운 단맛이 도는데, 옛 시선대로 속을 든든히 채우고 싶은 날에는 한 줌씩 곁들이기에 좋습니다.
목이 칼칼하고 마른기침이 도는 환절기에는 땅콩을 죽이나 국에 넣어 부드럽게 끓여 먹는 방법도 옛부터 전해 옵니다. 곱게 갈아 쌀과 함께 끓인 죽 한 그릇은 입맛이 없는 날에도 술술 넘어가니, 비위를 든든히 한다는 옛 시선과 폐를 적셔 준다는 기록 두 가지에 모두 들어맞는 차림입니다. 다만 기름기가 많은 열매인 만큼 한 번에 많이 드시기보다 조금씩 나눠 드시는 편이 속에 편안합니다. 오래 묵어 눅눅해지거나 군내가 나는 땅콩은 미련 없이 거두시는 편이 낫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린아이나 알레르기가 걱정되는 분이라면 처음에는 아주 적은 양으로 살펴 가며 드시길 권합니다. 호미님이 손수 길러 거둔 땅콩이 식탁 위에서 오래도록 든든한 한 끼가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