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말이 되면 북반구의 텃밭에서는 씨를 뿌리는 일보다 거두는 일이 많아집니다. 4월에 씨를 뿌린 황기(Astragalus membranaceus)도 10~11월이면 뿌리를 캘 수 있습니다. 황기는 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뿌리를 얻으려고 기릅니다. 한국에서는 삼계탕(어린 닭에 찹쌀·대추·마늘 등을 채워 끓인 국)이나 백숙(닭을 통째로 맑게 삶은 요리)에 넣는 말린 뿌리로 익숙한 작물입니다.
《동의보감》이 적은 단너삼 뿌리
《동의보감》은 17세기 초 한국(조선)에서 엮은 의학서입니다. 이 책의 草部(풀을 다룬 항목)에 황기(黃芪)가 실려 있고, 옛 한글 이름을 'ᄃᆞᆫ너삼 불휘'로 적었습니다. '불휘'는 뿌리를 뜻하는 옛말이어서, 풀어 쓰면 '단너삼 뿌리'가 됩니다.
책은 황기의 성질이 조금 따뜻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했습니다. 들에서 자라 곳곳에 있고, 음력 2월과 10월에 뿌리를 캐어 그늘에 말린다고 적었습니다. 좋은 뿌리로는 솜처럼 부드럽고 화살대처럼 곧은 것을 쳤습니다. 이 내용은 400여 년 전 의서의 서술이며, 지금의 의학 판단과는 다릅니다. 원문 표제와 풀이는 호미클럽 동의보감 풀이 페이지에서 함께 읽어 보세요.
지금의 성분 분석과 비교하기
여러 연구진이 황기속 식물에서 아스트라갈로사이드(astragaloside) 계열의 트리테르펜 사포닌(triterpene saponin)을 분리해 보고했습니다. 이 밖에 포모노네틴(formononetin) 같은 이소플라본(isoflavone), 국물에 끈기를 더하는 다당류(polysaccharide), 목질에 가까운 식이섬유가 들어 있습니다. 옛 기록과 이 분석은 어디가 같고 어디가 다를까요?
맛에서는 두 기록이 겹칩니다. 말린 뿌리를 물에 달이면 다당류와 당분이 먼저 우러나고, 국물이 노르스름해지며 걸쭉해진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동의보감》이 황기의 맛을 달다고 적은 것과 어긋나지 않습니다. 뿌리를 가려 쓴 점도 닮았습니다. 옛 의서는 모양과 촉감으로 뿌리를 골랐고, 지금의 분석은 뿌리의 부위와 자란 햇수에 따라 사포닌 함량이 다르다고 봅니다. 다만 옛 기준이 성분 함량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이 분석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다른 점도 있습니다. '조금 따뜻하다'는 성질은 옛 의학이 음식과 약재를 차고 따뜻한 정도로 나누던 기준이어서, 성분 분석에는 이에 맞는 항목이 없습니다. 반면에 사포닌이나 이소플라본이라는 이름은 옛 의서에 나오지 않습니다. 또 이 분석은 뿌리에 든 성분을 밝힌 것이고, 병을 막거나 고치는 효과를 보여 준 연구는 아닙니다. 그래서 텃밭에서 황기를 기른다면 약효보다 국물 맛을 보고 기르는 편이 옛 기록과 지금의 분석 양쪽에 맞습니다.
봄에 뿌리고 가을에 캐기
황기는 북반구 기준 4월에 씨를 뿌리고 10~11월에 뿌리를 캡니다. 남반구에서는 여섯 달을 옮겨 10월에 뿌리고 이듬해 4~5월에 캐면 됩니다. 뿌리를 얻는 작물이니 씨를 뿌리기 전에 흙을 깊게 일구고 돌을 골라 두세요. 옛 의서도 곧은 뿌리를 좋은 것으로 쳤으니, 뿌리가 내려가다 걸릴 곳을 줄여 두면 곧게 자라기 쉽습니다.
- 땅 위의 잎과 대가 누렇게 시들기 시작하면 캘 때가 된 것입니다.
- 뿌리가 깊이 뻗으므로 포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삽을 깊게 넣고, 부러지지 않게 천천히 들어 올려 보세요.
- 흙을 털어 씻은 뒤 《동의보감》의 기록처럼 그늘에서 말려 두세요.
- 여러해살이풀이라 한 해 더 두었다가 캐도 됩니다. 한 해 자란 뿌리와 두 해 자란 뿌리의 맛을 견주어 보세요.
심는 달과 캐는 달은 황기 작물도감에서 다시 확인해 보세요.
찬물에서부터 달여 먹기
황기 뿌리는 목질에 가까운 섬유질이어서 씹어 먹기보다 달여서 국물로 먹습니다. 달임물은 이렇게 내 보세요.
- 말린 황기 몇 뿌리를 찬물에 넣고 불에 올립니다.
- 끓어오르면 불을 줄여 30~40분 약하게 끓입니다.
- 물이 노르스름해지면 건더기를 건져 냅니다.
진하게 오래 달일수록 좋은 것은 아닙니다. 닭이나 오리와 함께 끓일 때도 처음부터 찬물에 황기를 넣고,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세요. 기름이 도는 국물에 황기의 은근한 단맛이 배어 뒷맛이 길어집니다. 대추와 마늘을 곁들이면 밋밋하던 단맛이 또렷해집니다. 대추는 갈라 넣어야 맛이 우러나고, 마늘은 통째로 넣어야 국물이 탁해지지 않습니다.
오늘은 말린 황기를 넣어 닭 국물을 한 번 끓여 보세요. 맛이 입에 맞으면 북반구 기준 내년 4월에 씨 뿌릴 자리를 텃밭 한쪽에 비워 두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