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반구에서 10월로 접어들면 유자나무 가지 끝의 열매가 초록빛에서 노란빛으로 조금씩 바뀝니다. 가시 사이로 손을 넣어 열매를 문지르면 손끝에 진한 향이 남습니다. 이 향은 대부분 껍질에서 나옵니다. 유자차를 마셔 본 적이 있다면 컵 바닥에 가라앉은 껍질 조각을 기억하실 겁니다. 한국에서는 껍질째 얇게 저며 설탕에 재운 유자청(yuja-cheong)을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십니다. 껍질을 주로 쓰는 이 열매를 17세기 초의 의서는 어떻게 적었을까요?
《동의보감》 果部에 실린 柚子
《동의보감》(Donguibogam)은 17세기 초 조선 시대 한국의 의관 허준(Heo Jun)이 엮은 의서입니다. 이 책은 과일을 모은 果部(과부)에 柚子(유자)를 따로 실었습니다. 원전은 작은 것을 귤, 큰 것을 유자라 하고, 등자(橙子, 감귤류의 한 종류)를 닮았으나 귤보다 크다고 적었습니다. 귤보다 크고 껍질이 두꺼운 열매를 유자로 가른 것입니다. 기록이 주로 다룬 부위는 향이 있는 껍질입니다.
원전의 柚子는 운향과(Rutaceae) 나무의 열매로, 오늘날 유자청과 유자차로 먹는 그 열매와 같습니다. 다만 이것은 옛 의서의 기록이며 현대 의학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원문 표제와 풀이는 호미클럽 동의보감의 유자 항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유자에서 확인하는 성분
유자(학명 Citrus junos)의 과즙과 껍질에 들어 있는 주요 성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비타민 C — 감귤류 가운데서도 많은 편입니다.
- 헤스페리딘(hesperidin) — 감귤류 껍질에 흔히 들어 있는 성분입니다.
- 리모넨(limonene) — 유자 특유의 향을 냅니다.
- 펙틴(pectin) — 유자청이 걸쭉해지는 것은 이 성분 덕분입니다.
옛 기록과 겹치는 곳은 껍질입니다. 《동의보감》이 향 있는 껍질을 주로 다루었듯이, 오늘날의 연구도 유자 껍질 추출물을 놓고 항산화 지표와 향 성분을 살폈습니다.
갈리는 곳도 있습니다. 옛 기록은 열매의 크기와 껍질 두께로 유자를 가렸고, 오늘날에는 성분 이름으로 설명합니다. 또 지금까지 나온 연구는 껍질 추출물을 다룬 것이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시험은 아직 적습니다. 그래서 유자가 특정 질병을 막거나 낫게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비타민 C가 많은 겨울 과일 하나로 식탁에 올리는 정도가 지금의 근거에 맞습니다.
텃밭에서 유자나무 기르기
유자는 중국이 원산지이고 한국과 일본에서 많이 기릅니다. 감귤류 가운데 추위를 잘 견디는 나무여서 귤보다 서늘한 곳에서도 겨울을 납니다. 그렇더라도 겨울이 길고 땅이 깊이 어는 지역이라면 큰 화분에 심어 한겨울에는 얼지 않는 실내로 들여 두는 쪽이 안전합니다.
심는 때는 북반구 기준 3~4월입니다. 씨앗에서 키운 나무는 열매를 맺기까지 오래 걸리므로, 접목한 묘목을 구해 햇볕이 잘 들고 물이 고이지 않는 자리에 심어 보세요. 거두는 때는 북반구 기준 10~11월입니다. 가지에 가시가 있으니 두꺼운 장갑을 끼고, 껍질이 노랗게 물들면 가위로 꼭지를 잘라 거두세요. 심는 때와 성분을 한눈에 보려면 작물도감의 유자 항목을 함께 열어 두세요.
유자를 식탁에 올리는 법
유자 껍질에는 향과 함께 쓴맛이 있습니다. 껍질째 먹는 열매이므로 흐르는 물에 문질러 씻은 뒤 쓰세요. 곁들일 재료를 잘 고르면 쓴맛은 줄고 향은 남습니다.
- 생강·꿀 — 유자청을 담글 때 생강을 얇게 썰어 함께 재워 보세요. 생강의 매운 향이 더해지면 껍질의 쓴맛이 덜 느껴집니다. 설탕 일부를 꿀로 바꾸면 넣는 설탕 양을 줄일 수 있습니다.
- 무·배 생채(saengchae, 익히지 않고 양념에 무친 채소) — 유자즙을 조금 넣으면 무의 매운맛이 순해집니다. 껍질을 아주 곱게 채 썰어 함께 무치고, 10분쯤 두었다 내면 향이 고루 퍼집니다.
- 흰살 생선·해산물 — 유자즙과 껍질을 뿌리면 비린내가 덜합니다. 오래 익히면 향이 약해지므로 조리를 마친 뒤에 올리세요. 껍질은 흰 속을 걷어 내고 노란 겉껍질만 씁니다.
오늘은 유자 한 알의 겉껍질을 곱게 채 썰어 저녁 무생채나 생선구이 위에 조금 올려 보세요.
출처: 허준, 《동의보감》 탕액편 果部 「柚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