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만나는 오크라
호미님, 여름 텃밭 한구석에 오크라 한 포기 길러 보신 적 있으신지요. 노란 무궁화를 닮은 꽃이 피고 나면, 그 자리에 별 모양 단면을 가진 풋고추 같은 꼬투리가 하늘을 향해 달립니다. 손가락만 할 때 따서 칼로 송송 썰면, 단면에서 미끈한 진액이 배어 나옵니다. 이 끈적함을 두고 좋아하는 분과 낯설어하는 분이 갈리는데, 오크라(Abelmoschus esculentus)의 성격은 바로 이 점액에 다 들어 있다고 해도 좋겠습니다.
오크라는 아프리카가 고향인 아욱과 작물입니다. 우리 식탁에는 비교적 최근에 들어온 채소여서, 시장보다 텃밭에서 먼저 만나 본 호미님도 적지 않으실 듯합니다.
동의보감에는 어떻게 나올까요
여기서 한 가지 솔직하게 말씀드리려 합니다. 오크라는 한국 전통 의서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작물입니다. 동의보감이 정리되던 시절, 이 채소는 아직 우리 땅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동의보감은 오크라를 이러이러한 약재로 보았습니다"라고 적는다면 그것은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옛 약효를 억지로 끌어오는 대신, 동의보감이 채소를 바라보던 눈으로 오크라를 새로 살펴보려 합니다. 옛 의서는 음식의 성질을 따뜻한지 서늘한지, 미끄러운지 메마른지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 잣대를 빌려 보면, 자르면 흐르는 미끈한 점액질이 오크라의 가장 또렷한 특징입니다. 옛사람들이 아욱이나 마처럼 미끈한 채소를 두고 속을 부드럽게 다스린다고 여겼던 맥락 안에, 오크라도 자연스레 자리할 만한 채소라고 짐작해 봅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짐작이지, 동의보감이 직접 남긴 기록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두겠습니다.
오늘의 영양학과 견주면
옛 기록이 없는 만큼, 오크라는 현대 영양학의 눈으로 보는 편이 정직하겠습니다. 그 미끈한 점액질의 정체는 뮤신과 펙틴이라 불리는 성분으로, 물에 녹는 수용성 식이섬유입니다. 이 수용성 식이섬유는 장 건강과 관련해 자주 거론되고, 식사 뒤 혈당이 가파르게 오르는 것을 완충하는 흐름과 함께 이야기되곤 합니다.
옛 의서가 미끄러운 채소를 두고 속을 부드럽게 한다고 본 시선과, 오늘날 수용성 식이섬유가 소화의 흐름을 거든다고 보는 관점은 어딘가 닿아 있는 데가 있습니다. 표현하는 언어가 다를 뿐, 같은 미끈함을 바라보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호미님께 한 가지는 짚어 드리고 싶습니다. 오크라가 특정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직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 근거가 넉넉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약처럼 기대하기보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좋은 채소 한 가지로 식탁에 들이는 마음이 가장 알맞다고 봅니다.
텃밭에서 식탁으로
오크라는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채소입니다. 어릴 때 따야 부드럽고, 커지면 질겨지니 꼬투리가 손가락 길이쯤일 때 거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먹는 법은 단출합니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간장이나 된장에 무치면 미끈함이 한결 부드럽게 입에 감기고, 송송 썰어 국이나 찌개에 넣으면 자연스레 걸쭉한 농도가 생깁니다. 그 끈적함이 낯선 호미님이라면 통째로 구워 보시길 권합니다. 기름에 살짝 구우면 점액이 줄고 고소한 맛이 살아납니다. 데친 오크라에 가다랑어포를 얹는 일본식 한 그릇도 여름 입맛에 잘 맞습니다.
크게 가릴 음식은 아니지만, 미끈한 식감이 부담스러운 분은 조리로 점액을 줄이시면 한결 편하게 즐기실 수 있습니다. 텃밭에서 갓 딴 오크라 한 접시면, 여름 한 끼가 제법 넉넉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