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반구 텃밭에서 10월이 되면, 물을 채운 고무 대야에 심어 둔 소귀나물 잎 끝이 조금씩 누렇게 바랩니다. 봄에 묻은 알뿌리에서 여름 내내 잎이 자랐고, 지금은 흙 속 기는줄기 끝에서 새 알뿌리가 굵어집니다. 잎이 다 시드는 11~12월에 대야 바닥을 헤쳐 그 알을 거둡니다. 소귀나물(학명 Sagittaria trifolia, 영어 이름 arrowhead)은 택사과의 물풀로, 이 알뿌리를 먹으려고 기릅니다. 400여 년 전의 의서는 이 풀을 어떻게 적었을까요?
《동의보감》이 적은 '물웃'
《동의보감》은 17세기 초 조선의 의관 허준이 엮은 의서입니다. 이 책의 草部(풀 항목)에 소귀나물 무리가 야자고(野茨菰)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고, 한글 이름은 '물웃'으로 적혀 있습니다. 기록을 풀어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성질은 차고 맛은 쓰며 독이 없습니다.
- 논밭과 들에 자라 곳곳에 있습니다.
- 잎이 가위처럼 생겨 전도초(剪刀草)라 부르던 풀이 곧 야자고입니다.
- 흉년(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못한 해)에는 사람들이 그 뿌리를 캐어 삶아 먹었는데 맛이 매우 좋았다고, 민간에 전하던 방법(俗方)을 들어 적었습니다.
'차다'와 '쓰다'는 옛 의학이 음식과 약의 성질과 맛을 나눌 때 쓰던 말입니다. 온도계나 실험으로 잰 값이 아니고, 이 기록만으로 어떤 병에 듣는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옛 의서의 서술은 지금의 영양학 판단과 다르다는 점을 먼저 밝혀 둡니다. 원문과 풀이는 호미클럽 동의보감의 물웃 항목에 옮겨 두었습니다.
출처: 허준, 《동의보감》 草部 「야자고(野茨菰)」
지금의 성분과 견주어 보면
지금의 작물 기록은 같은 알뿌리를 성분과 조리 특성으로 설명합니다. 도감에 오른 성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전분(starch) — 알뿌리에 저장된 탄수화물입니다. 삶으면 포슬포슬한 결을 내고, 몸에 들어가서는 열량이 됩니다.
- 칼륨(potassium) — 채소에 흔히 들어 있는 무기질입니다.
- 식이섬유(dietary fiber) — 씹는 결을 이루는 성분입니다.
두 기록이 겹치는 곳은 흉년의 대목입니다. 삶아 먹으니 맛이 매우 좋았다는 옛 서술은, 저장된 전분이 익으면서 포슬포슬해지는 성질과 맞습니다. 전분이 많은 알뿌리는 배를 채우고 열량을 주므로, 곡식이 모자란 해에 구황 작물(흉년에 굶주림을 견디려고 먹던 작물)로 쓰였을 것입니다. 논밭과 들 곳곳에 자랐다고 했으니, 손쉽게 캘 수 있는 먹을거리였던 셈입니다.
다른 곳도 있습니다. 옛 기록은 차고 쓴 성질을 말했고, 지금의 기록은 성질 대신 성분을 적습니다. 칼륨과 식이섬유는 여러 채소에 고루 들어 있는 성분이어서, 이것만으로 소귀나물에 남다른 효능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알뿌리도 달라졌습니다. 《동의보감》의 야자고는 들에 저절로 자라던 풀입니다. 지금 자고(慈姑)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알뿌리는 보풀속(Sagittaria) 식물 가운데 알이 굵어지는 계통을 골라 길러 온 작물입니다.
물 채운 대야에서 기르기
소귀나물은 논과 물가에서 자라는 풀이라, 텃밭에서는 물이 빠지지 않는 큰 통이나 고무 대야에 기릅니다. 북반구 기준 4~5월에 알뿌리를 심고 11~12월에 거둡니다.
- 심기 — 통 바닥에 논흙이나 진흙을 두툼하게 깔고, 알뿌리를 싹이 위로 오게 묻은 뒤 흙 위로 물이 고이도록 채워 보세요.
- 돌보기 — 여름에는 물이 빨리 줄어듭니다. 흙이 드러나지 않게 물을 수시로 보태 주세요.
- 거두기 — 잎이 누렇게 시들면 물을 빼고 흙을 손으로 파 보세요. 기는줄기 끝에 알뿌리가 달려 있습니다.
심는 달과 거두는 달, 어울리는 요리는 소귀나물 작물도감에 함께 정리해 두었습니다.
식탁에 올리는 법
처음 거둔 해에는 옛 기록처럼 껍질을 벗겨 삶기만 해서 맛을 먼저 보세요. 《동의보감》이 적은 쓴맛이 어느 정도인지도 그때 혀로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도감에 실린 먹는 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간장 조림 — 삶은 알뿌리에 간장과 물엿을 넣고, 불을 세게 하지 말고 짧게 조려 보세요. 오래 조리면 알이 부서집니다. 정월(새해 첫 달) 상에 오르던 조림입니다.
- 얇게 저며 튀기기 — 껍질 벗긴 날 알뿌리를 얇게 저며 찬물에 잠깐 담가 두면, 겉의 전분이 씻겨 서로 붙지 않습니다. 기름에 튀기면 전분이 굳어 바삭해집니다. 소금만 뿌려 먹습니다.
- 밥에 넣어 짓기 — 삶은 알뿌리를 반으로 갈라 쌀 위에 얹고 밥을 지어 보세요. 밤을 넣은 밥과 결이 비슷하되 단맛은 덜합니다. 간장 양념장을 곁들여 드세요.
대야에 소귀나물이 자라고 있다면 오늘 물높이를 살펴 흙이 드러나지 않게 채워 두세요. 아직 기르지 않는다면 내년 4~5월에 알뿌리를 묻을 대야 자리를 미리 정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