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채소를 걷어낸 밭 귀퉁이가 9월이면 비어 있습니다. 다음 작물을 넣기에는 이르고, 그대로 두면 겨우내 비에 씻겨 표면이 굳습니다. 여기에 말냉이 씨를 뿌리면 가을에 싹이 터 겨울 동안 땅을 덮고, 이른 봄 다른 채소가 아직 크기 전에 첫 나물이 올라옵니다. 밭둑에서 뜯어 오던 들풀이지만 씨를 받아 심으면 텃밭에서도 잘 자랍니다.
가을에 씨를 뿌립니다
말냉이는 겨울 한해살이 십자화과 풀입니다. 가을에 싹이 터 잎을 땅에 붙인 로제트로 겨울을 나고, 추위를 겪은 뒤 봄에 해가 길어지면 꽃대가 섭니다. 그래서 씨 뿌리는 때가 가을입니다. 한국·중국·일본에 자생하며 서늘한 철에 자라는 성질이라, 위도가 비슷한 지역이면 아래 일정을 그대로 대볼 수 있습니다.
- 파종: 북반구 기준 9~10월 (남반구는 3~4월로 옮겨 읽으세요)
- 생육: 적온 10~20℃, 자라는 범위 2~28℃
- 거두기: 북반구 기준 3~4월, 꽃대가 서기 전
씨가 작아 흙을 두껍게 덮으면 싹이 올라오지 못합니다. 갈퀴로 표면을 긁어 고른 뒤 흩뿌리고 손바닥으로 가볍게 눌러 두는 정도면 됩니다. 줄을 맞춰 뿌리면 봄에 뜯기 편합니다. 낮 기온이 25℃ 아래로 내려간 뒤에 뿌려 보세요.
겨울에는 돌볼 일이 적습니다
눈 밑에서도 살아남을 만큼 추위에 강합니다. 짚이나 부직포를 씌우지 않아도 로제트는 그대로 겨울을 넘깁니다. 덮개를 두껍게 얹으면 오히려 잎이 무르기 쉽습니다. 다만 씨를 뿌린 직후 흙이 마르면 싹이 고르지 않으니, 떡잎이 나올 때까지는 표면이 마를 때 물을 줍니다.
겨울을 난 잎은 봄볕을 받으면 빠르게 커집니다. 그러나 같은 볕에 꽃대도 올라오고, 꽃대가 서면 잎이 질겨집니다.
꽃대가 서기 전에 뜯습니다
먹는 것은 꽃대가 오르기 전의 어린 로제트입니다. 가운데 순이 위로 솟기 시작한 포기는 넘기고, 아직 납작하게 붙어 있는 것부터 뿌리 위쪽을 칼로 잘라 거둡니다. 한 번에 다 뜯지 말고 며칠 간격으로 나누면 먹는 기간이 길어집니다.
냉이와 헷갈릴 수 있습니다. 말냉이는 잎이 냉이보다 크고 두툼해 옛사람들도 굵은 냉이라 불렀습니다. 열매가 달린 뒤에는 구별이 쉬워집니다. 냉이는 삼각형 꼬투리를, 말냉이는 둥글고 납작한 꼬투리를 답니다. 밭둑이나 논둑에서 뜯을 때는 제초제를 친 자리와 길가를 피하세요.
데쳐서 무칩니다
십자화과 식물에는 글루코시놀레이트가 들어 있습니다. 조직이 깨지면 효소가 움직여 매운 기를 내는 물질로 바뀌고, 가열하면 그 반응이 멎습니다. 데친 말냉이가 순해지는 까닭입니다.
끓는 물에 잠깐 데쳐 찬물에 헹군 뒤 물기를 짭니다. 잎에 든 비타민 C는 물에 녹아서 오래 데울수록 데치는 물로 빠져나갑니다. 짧게 데치는 편이 낫습니다.
물기를 짠 나물을 된장과 들기름으로 무치면 매운 기가 남아 있어 간을 세게 하지 않아도 맛이 납니다. 다진 마늘을 조금 넣으면 맛이 부드러워집니다. 잎이 두툼해 부침가루에 버무려 얇게 지져도 부서지지 않습니다. 기름에 지진 것은 아이도 먹기 좋습니다. 무친 나물을 갓 지은 밥에 얹고 참기름과 간장을 조금만 더해 비벼 보세요.
씨는 여름 전에 받습니다
말냉이는 여름 더위가 오기 전에 씨를 맺고 말라 죽습니다. 그러니 꽃대가 선 포기를 몇 개 남겨 두면 꼬투리가 여물고, 그 씨로 다음 가을에 다시 뿌릴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 草部는 이 씨를 석명자(菥蓂子)로 싣고 옛 한글 이름을 '굴근나이 ᄡᅵ'라 적었습니다. 성질이 조금 따뜻하고 맛이 맵고 독이 없다고 했습니다. 곳곳에 흔하니 음력 4~5월에 열매를 따 볕에 말린다는 채취법도 남겼습니다. 실린 것은 잎이 아니라 씨입니다. 옛 의서의 서술은 오늘날의 판단과 다르므로 기록으로만 읽습니다.
말냉이 씨 기름에는 에루스산의 비중이 큽니다. 그래서 기름 원료 작물로도 다루어져 왔습니다. 나물로 먹는 어린잎과는 별개입니다.
여름 작물을 걷어낸 흙이 아직 부드러운 이번 주에 한 줄만 뿌려 두세요. 북반구는 9월이 파종 적기입니다. 봄에 냉이보다 두툼한 잎을 뜯어 된장에 무칠 수 있습니다.
출처: 《동의보감》 草部 菥蓂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