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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자색당근 껍질, 버리기 전에 한 번 더

깎아낸 껍질에 색소와 항산화 성분이 더 진하게 남습니다

늦여름에 뿌려 서리를 맞힌 자색당근은 겨울을 지나며 단맛이 오릅니다. 뽑아서 흙을 씻어내면 겉은 짙은 보라, 잘라 보면 속은 주황에 가깝습니다. 감자칼로 겉을 얇게 벗겨 한쪽에 밀어두는 사이 도마에는 보랏빛 물이 배어 나옵니다. 밭일이 바쁘면 껍질부터 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색이 몰려 있는 쪽은 먹는 부분이 아니라 버리려고 모아둔 껍질입니다.

보라색은 껍질 쪽에 몰려 있습니다

자색당근의 보라색은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에서 나옵니다. 이 색소는 뿌리 전체에 고르게 퍼지지 않고 겉껍질과 그 바로 아래 층에 쌓입니다. 폴리페놀도 마찬가지여서, 깎아낸 껍질에는 속살보다 색소와 항산화 성분이 진하게 남습니다.

2026년 학술지 플랜츠에 실린 연구에서 연구진은 자색당근 껍질을 말려 성분을 분석했습니다. 페놀 계열 화합물 32가지가 확인되었고 그중 가장 많은 것은 시킴산이었습니다. 말린 껍질 1g에서 얻은 폴리페놀은 약 20mg, 안토시아닌은 약 2mg이었습니다. 가공 공장에서 하루에도 수백 킬로그램씩 버려지는 부분에 이만큼이 남아 있습니다.

잘 우러나는 조건이 따로 있습니다

연구진은 온도와 시간, 용매 농도, 산도를 바꿔 가며 서른 번 실험했습니다. 성분이 가장 많이 빠져나온 조건은 산도 4 정도의 약한 산성, 80도, 36분가량이었습니다. 알코올을 절반 섞은 용매는 공장 설비를 전제한 조건이라 부엌에서 따라 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약한 산성과 짧은 가열은 집에서도 그대로 통합니다.

안토시아닌은 중성이나 알칼리성 물에서 색이 흐려지고 회색빛으로 바뀝니다. 오래 끓이면 구조가 깨져 색과 항산화력이 함께 줄어듭니다. 자색당근을 데칠 때 식초나 레몬즙을 몇 방울 떨어뜨리면 보라색이 오래 남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거꾸로 소다를 넣은 물에 데치면 색이 눈에 띄게 빠집니다.

부엌에서 껍질을 살리는 법

흙만 솔로 문질러 씻고 껍질째 썰어 보세요. 그래도 벗겨야 한다면 깎은 껍질을 따로 그릇에 모으면 됩니다.

  • 우린 물 들이기 — 껍질에 식초 한 작은술 넣은 미지근한 물을 붓고 20분쯤 두면 분홍빛 물이 우러납니다. 밥물이나 수제비 반죽, 무 절임 물에 섞어 보세요.
  • 기름에 볶기 — 껍질을 잘게 썰어 기름에 볶으면 당근의 카로틴을 함께 챙길 수 있습니다. 지용성이라 기름과 함께 먹을 때 몸에 더 잘 들어옵니다.
  • 말려 두기 — 채반에 널어 바싹 말린 껍질은 국물이나 차에 넣습니다. 말리면 부피가 줄어 보관도 편합니다.

안토시아닌과 폴리페놀은 몸속 산화 반응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껍질을 챙겨 먹는 것만으로 혈관이나 눈 건강이 좋아진다고 말하기에는 근거가 아직 모자랍니다. 색이 진한 채소를 꾸준히 먹는 습관의 하나로 보시면 됩니다.

오늘 저녁 자색당근을 다듬으실 때 껍질은 쓰레기통 대신 작은 그릇에 모아 두세요. 미지근한 물과 식초 몇 방울이면 그날 밥물이 곱게 물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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