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 가장자리에 엄나무를 한 그루 심어 두면, 줄기에 촘촘히 붙은 굵고 넓적한 가시를 보고 걸음을 멈추는 사람이 생깁니다. 묻는 말도 대개 비슷합니다. 백숙에 넣는 그 나무가 맞는지, 해동피라는 이름과 같은 것인지, 껍질을 우려 매일 마셔도 되는지를 묻습니다. 봄 순을 개두릅이라 부르며 데쳐 먹는 일은 널리 알려진 쓰임이죠. 그러나 껍질에 관해서는 사람들 사이에 도는 말과 옛 기록, 성분 분석 결과가 서로 다릅니다.
엄나무(Kalopanax septemlobus)는 한국·중국·일본·러시아에서 자라는 두릅나무과의 낙엽 큰키나무입니다. 잎은 손바닥 모양으로 5~9갈래 갈라집니다. 다 자라면 키가 10m를 넘으니, 좁은 텃밭보다는 마당 한쪽이나 밭 가장자리에 심습니다. 묘목은 북반구 기준 3~4월 이른 봄에 옮겨 심고, 순을 딸 만큼 자라기까지는 몇 해가 걸립니다.
해동피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요?
한국에서는 엄나무 껍질을 해동피(海桐皮)라 부르며 다뤄 왔습니다. 이 이름은 옛 의서에 나옵니다. 《동의보감》 木部의 海桐皮 항목은 성질이 평하다고도 하고 따뜻하다고도 하며, 맛이 쓰고 독이 없다고 적었습니다. 껍질이 개오동의 흰 껍질과 비슷하고 달을 가리지 않고 벗긴다고 했으며, 당시 조선에서는 제주에만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엄나무는 지금 한국 곳곳의 산지에 자라고 밭에서도 기릅니다. 제주에만 있다는 옛 설명과 나란히 놓으면, 옛 의서의 海桐皮가 이 나무와 같은 나무인지 묻게 됩니다. 이 물음을 두고는 견해가 갈립니다. 엄나무 껍질을 해동피라고 불러 온 것은 사실이지만, 둘을 같은 것으로 단정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또 《동의보감》의 설명은 옛 기록이며 현대 의학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해동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옛 책의 설명을 엄나무 껍질의 효능으로 그대로 옮겨 읽지 않는 편이 안전합니다.
껍질에서 분리된 성분
성분 분석은 옛 의서보다 좁은 범위를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엄나무 껍질에서 칼로파낙스사포닌(kalopanaxsaponin)이라는 성분이 분리되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트리테르페노이드 사포닌 계열의 배당체로, 쓴맛을 내고 거품이 이는 데 관여합니다. 엄나무에는 이 밖에 떫은맛과 자른 면이 갈색으로 변하는 데 관여하는 폴리페놀, 세포벽을 이루는 다당류인 식이섬유도 들어 있습니다.
이 분석에는 함량 이야기도 함께 실렸습니다. 부위와 채취 시기에 따라 사포닌 함량 차이가 크다는 결과입니다. 그래서 어느 부위를 언제 거뒀느냐에 따라 껍질 한 조각에 든 양도 달라질 것입니다. 다만 이런 분석은 껍질이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살핀 것입니다. 사람이 먹었을 때 몸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아직 현대 연구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백숙 냄비에는 한두 조각
엄나무 껍질을 가장 흔하게 쓰는 곳은 백숙 냄비입니다. 껍질 한 조각을 넣고 오래 끓이면 국물에 옅은 향과 쌉쌀한 맛이 뱁니다. 예부터 이어 온 조리 관습입니다. 이때 쓰는 양은 국물 맛을 내는 한두 조각까지입니다. 국물을 진하게 뽑으려고 껍질을 많이 넣으면 맛이 텁텁해집니다.
집에서 끓인다면 이렇게 챙겨 보세요.
- 껍질은 한 조각부터 넣고, 두 조각을 넘기지 않습니다.
- 향이 옅게 느껴져도 조각을 더 보태지 않습니다.
- 다 끓인 뒤에는 껍질을 건져 내고 국물만 뜹니다.
껍질 우린 물, 매일 마셔도 될까요?
엄나무 껍질을 물에 우려 마시는 일은 민간에서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본 대로 사람이 먹었을 때의 작용은 확인되지 않았고, 껍질의 사포닌은 부위와 채취 시기에 따라 함량이 크게 다르다고 보고됩니다. 따라서 집에서 우린 물 한 잔에 무엇이 얼마나 들었는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백숙에 한두 조각 넣는 정도를 넘겨 진하게 우린 물을 약처럼 매일 마시는 일은 권하지 않습니다.
약을 복용 중이거나 임신 중이라면 껍질 우린 물은 특히 삼가세요. 이미 마셔 왔다면 의사나 약사에게 그 사실을 알리세요.
봄 순은 생으로 먹지 않고,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어 30초에서 1분 데친 뒤 찬물에 헹궈 씁니다. 순을 데쳐 먹는 법과 심는 시기는 호미클럽 엄나무 작물도감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집에 말린 엄나무 껍질이 있다면, 다음 백숙에는 한 조각만 넣어 보세요.
근거: 《동의보감》 木部 海桐皮 항목, 엄나무 껍질 사포닌 성분 분석 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