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this page in English →

Photo by Chris F on Pexels

작물 도감

비트 잎 뒤의 작은 벌에게 헤밍웨이 이름이 붙었습니다

사탕무 바구미를 잡는 기생벌, 그 기생벌을 다시 노리는 벌 — 우리 텃밭 사정도 같습니다

비트를 솎다 보면 잎 뒷면에 아주 작은 벌이 앉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몸길이가 3mm도 안 되니 날파리로 알고 손으로 쫓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만한 크기의 벌 상당수는 잎을 갉는 쪽이 아니라 잎을 갉는 벌레의 애벌레에 알을 낳는 쪽입니다. 텃밭 일손을 덜어 주는 편입니다.

사탕무 밭에서 이름을 얻은 벌

지난 7월, 중국 신장의 이닝시와 차푸차얼 시버 자치현 사탕무 밭을 조사한 국제 연구진이 그동안 이름이 없던 벌 한 종에 학명을 붙였습니다. 클로로시투스 파파헤미이(Chlorocytus papahemii). 헤밍웨이의 별명 '파파'에서 따온 이름이고, 공개 시점도 헤밍웨이의 생일인 7월 21일에 맞췄습니다. 몸에 금속 광택이 도는 작은 벌입니다.

연구진이 이 밭을 찾은 까닭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 지역 사탕무 밭에서는 바구미 한 종(Lixus subtilis) 피해가 되풀이됩니다. 애벌레가 줄기 속을 파고드는 바구미로, 중·동유럽과 카프카스, 서아시아, 중국의 사탕무 농사에서 오래 문제였습니다. 약을 뿌려 잡기보다 이 바구미를 줄여 줄 천적을 찾는 것이 조사 목적이었습니다.

천적은 실제로 나왔습니다. 바구미 애벌레에 알을 낳는 기생벌 유리토마 쿠르쿨리오눔이 중국에서는 이번 조사에서 처음 확인됐습니다.

천적을 다시 노리는 쪽

그런데 새로 이름을 얻은 파파헤미이는 바구미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바구미를 잡아 주는 그 기생벌에 알을 낳습니다. 사탕무를 바구미가 먹고, 그 바구미를 기생벌이 잡고, 그 기생벌을 다시 이 벌이 노립니다. 먹고 먹히는 순서가 네 단계로 이어지는 셈입니다.

천적을 늘려 해충을 줄이려는 밭에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닙니다. 이런 이차기생벌(중복기생벌)이 많으면 애써 불려 놓은 기생벌 수가 도로 줄어듭니다. 연구진이 새 종 하나를 기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관계 전체를 그려 둔 까닭입니다. 천적을 쓰기 전에 그 천적을 잡는 쪽까지 알아야 예측이 어긋나지 않습니다.

텃밭에서 기생벌을 남기는 법

텃밭의 비트와 근대는 사탕무와 같은 종에서 갈라져 나온 품종이고, 시금치도 가까운 무리에 듭니다. 사탕무 바구미가 우리 텃밭까지 오는 일은 드물지만, 잎 속을 파먹는 굴파리 애벌레와 진딧물에는 같은 방식으로 천적이 붙습니다. 진딧물이 부풀어 갈색으로 굳어 있는 것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진디벌이 알을 낳은 자리이고, 그 굳은 진딧물에도 다시 다른 벌이 붙습니다.

오늘 텃밭에서 챙겨 보실 일은 이렇습니다.

  • 부풀어 굳은 진딧물은 떼지 말고 그대로 두세요. 며칠 뒤 그 안에서 기생벌이 나옵니다.
  • 진딧물이 조금 보인다고 밭 전체에 약을 치지 마세요. 진딧물보다 기생벌이 먼저 사라집니다. 몰린 잎만 골라 따 내거나 물로 씻어 내는 편이 낫습니다.
  • 밭 가장자리에 딜·고수·회향처럼 작은 꽃이 촘촘히 피는 풀을 심어 보세요. 어른 기생벌은 꽃꿀을 먹고 지내면서 알만 벌레에 낳습니다.

비트를 솎는 김에 잎을 한 번 뒤집어 보세요. 굳은 진딧물이나 아주 작은 벌이 보이면 그 자리는 손대지 않고 두시면 됩니다. 약을 덜 친 밭일수록 기생벌이 오래 남습니다.

이 글 공유하기
0%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