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에 옮겨 심은 가을배추가 속을 채워 갈 무렵, 밑동 쪽 잎 한 장이 물에 젖은 듯 반투명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손끝으로 누르면 힘없이 꺼지고 시큼한 냄새가 올라옵니다. 배추 무름병입니다. 하루 이틀 사이 옆 잎까지 번지는 모습을 보면, 무른 자리가 왜 이렇게 빨리 넓어지는지 궁금해집니다. 2026년에 발표된 한 연구가 그 물음에 일부 답을 내놓았습니다.
무른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
배추 무름병은 펙토박테리움 카로토보룸(Pectobacterium carotovorum)이라는 세균이 일으킵니다. 이 균은 흙과 물속에 머물다가 벌레 먹은 자리나 긁힌 상처로 들어가 식물 세포벽을 녹이는 효소를 내놓습니다. 세포끼리 붙여 주는 펙틴이 풀리면 잎 조직이 흐물흐물해지고 즙이 흘러나옵니다.
연구진은 균이 배추 잎에 퍼지는 동안 무른 자리의 가운데와 가장자리에서 어떤 유전자가 작동하는지 살폈습니다. 유전자가 작동할 때 빛이 나도록 녹색 형광 단백질(GFP)을 붙여 두고 위치별 밝기를 비교했습니다. 병이 진행되자 무른 자리 가운데에는 포도당과 펙틴이 먼저 쌓였다가 차츰 줄었고, 가장자리는 당분이 적은 상태로 남았습니다.
당분이 적은 가장자리에서 더 움직입니다
연구진은 가장자리에서 편모 유전자가 더 많이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편모는 세균이 헤엄쳐 이동할 때 돌리는 가는 실 모양 기관입니다. 이 차이를 만든 것은 포도당이 모자랄 때 활발해지는 조절 단백질 cAMP-CRP(고리형 AMP–수용 단백질 복합체)였습니다. 당분이 적은 가장자리에서 균은 이동에 쓰는 유전자를 더 많이 작동시켜 바깥쪽 성한 조직으로 옮겨 갑니다.
펙틴 분해 산물에 반응하는 또 다른 조절 단백질 KdgR도 이 위치별 차이에 함께 관여했습니다. 그러나 세포벽을 녹이는 효소 유전자는 가운데와 가장자리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작동했습니다. 균은 무른 자리 전체에서 조직을 녹이면서, 가장자리에서는 이동을 늘려 번지는 범위를 넓힙니다.
연구진이 cAMP-CRP를 없앤 균을 배추에 넣자 가운데와 가장자리의 차이가 사라졌고 무른 자리도 잘 넓어지지 못했습니다. KdgR만 없앤 균에서는 이런 변화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cAMP-CRP가 조절하는 유전자를 새로 여럿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다만 실험실에서 배추 잎에 균을 접종해 얻은 결과여서, 날씨와 흙이 제각각인 밭에서도 똑같이 작동하는지는 더 살펴봐야 합니다.
텃밭과 식탁에서 챙길 일
이 연구가 새 방제법을 내놓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균이 상처로 들어와 당분이 적은 가장자리 쪽으로 옮겨 간다는 관찰은 배추를 기르고 다듬을 때 참고가 됩니다.
- 모종을 옮겨 심거나 김을 맬 때 잎과 뿌리에 상처가 나지 않게 다루세요. 벌레 먹은 자리로도 균이 들어가니 잎 뒷면을 자주 들여다보세요.
- 물은 밑동 흙에 주고, 이랑을 높여 물이 고이지 않게 하세요. 무름병은 덥고 습한 날씨에 빨리 번집니다.
- 물러진 포기는 발견한 날 뽑아 밭 밖으로 치우세요. 같은 자리에 배추를 해마다 이어 심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 거둔 배추에 무른 잎이 한두 장 있으면 보이는 경계보다 넉넉하게 떼어 내세요. 가장자리에서 균이 이동하고 있었다는 관찰로 미루어, 멀쩡해 보이는 바로 옆 조직에도 균이 들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무름병균은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균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물러진 조직에는 다른 미생물도 함께 자라기 쉬우므로, 속까지 무른 포기는 먹지 말고 버리는 편이 안전합니다. 성한 배추는 수분이 많고 비타민 C와 식이섬유를 담고 있어, 싱싱할 때 쌈이나 김치로 드셔 보세요. 거둔 배추는 겉잎을 몇 장 남긴 채 서늘하고 바람이 통하는 곳에 두면 무른 자리가 덜 생깁니다.
오늘 텃밭에 나가면 배추 밑동 잎을 한 장씩 들춰, 물기 어린 반투명한 자리가 없는지 살펴보세요.
참고: Microbiological Research 2026년 게재 논문 「펙토박테리움 카로토보룸의 병원성을 조절하는 cAMP-CRP와 KdgR의 시공간 상호작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