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텃밭 두렁에 맨드라미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북반구 기준 4~5월에 씨를 뿌려 두면 장마를 넘긴 뒤로는 손이 거의 가지 않습니다. 7월부터 10월까지 두툼하게 주름진 꽃이삭을 올립니다. 붉은색이 가장 진해질 무렵이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 꽃, 따서 차로 우려도 될까요?
붉은빛을 내는 색소 — 비름과의 베타시아닌
맨드라미(Celosia cristata)는 비름과 식물입니다. 비름과 식물의 붉은 색소는 베타시아닌(betacyanin) 계열입니다. 질소를 품은 색소여서, 포도나 블루베리의 붉은보라를 내는 안토시아닌(anthocyanin)과는 계열이 다릅니다. 이 차이가 부엌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베타시아닌은 산성에서 비교적 안정하고, 오래 가열하면 분해됩니다. 그늘에 바싹 말린 꽃이삭에 끓는 물을 붓고 3~5분 두면 맑은 붉은빛이 우러납니다. 그러나 냄비에 넣고 오래 끓이면 색이 갈색으로 흐려집니다. 우려 둔 차가 탁해졌다면 대개 끓인 시간이 길었던 탓입니다. 우린 물에 레몬즙을 몇 방울 떨어뜨려 보세요. 산을 만나면 붉은빛이 다시 선명해집니다.
떡이나 전에 얹을 때도 같은 성질이 이어집니다. 화전이나 백설기 위에 올린 꽃잎은 붉은색이 그대로 남습니다. 두툼한 꽃이삭은 통째로 쓰기 어려우니 가장자리만 얇게 저며 쓰세요.
따기 전에 확인할 것 한 가지
색을 내는 법보다 먼저 정할 것이 있습니다. 종묘상과 화훼 매장에서 파는 맨드라미 모종과 씨앗은 보기 위한 꽃으로 길러서, 어떤 약제를 언제 썼는지 기록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길가나 공원 화단에 심긴 꽃도 마찬가지입니다.
- 관상용으로 파는 모종과 씨앗 — 차나 음식에 쓰지 않습니다.
- 길가·공원 화단의 꽃 — 따지 않습니다.
- 먹을 목적으로 씨를 사서 따로 뿌린 줄 — 여기서만 땁니다.
그래서 정하는 때가 앞당겨집니다. 꽃이 핀 다음에 먹을지 고르는 대신, 씨를 뿌릴 때 먹을 몫을 미리 떼어 둡니다. 볕이 길게 드는 자리에, 관상용 화단과 떨어뜨려 한 줄 잡아 보세요. 씨 뿌리는 달과 꽃 따는 달은 맨드라미 도감에 달력으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옛 기록이 적어 둔 것
《동의보감》 초부(草部)는 이 꽃을 계관화(雞冠花)로 싣고, 옛 한글 이름을 '만ᄃᆞ라밋 곳'이라 적었습니다. 꽃이삭이 닭의 볏을 닮아 그 이름이 붙었다고 유래까지 밝혀 두었습니다. 성질이 서늘하고 독이 없다고 했으며, 약에 넣을 때는 볶아서 쓴다고 손질법도 함께 적었습니다.
다만 옛 의서의 서술은 오늘날의 판단과 다릅니다. 기록에 적힌 쓰임은 약에 넣는 일이고, 지금 부엌에서 하는 일은 말린 꽃을 몇 분 우려 마시는 일입니다. 목적도 양도 다릅니다. 옛 기록을 보고 함부로 양을 늘려 달여 마시지 않습니다. 임신 중이거나 복용 중인 약이 있다면 꽃차도 양을 늘리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말릴 때 — 비름 꽃가루
맨드라미는 비름과이고 꽃가루가 날립니다. 비름 꽃가루에 반응한 적이 있다면 이삭을 털거나 말릴 때 실내를 피하고, 마른 이삭은 봉지에 담아 다루세요. 말리는 자리는 그늘지고 바람이 드는 곳으로 잡으세요.
서아프리카에서는 같은 속의 개맨드라미(Celosia argentea)를 잎채소로 널리 기릅니다. 꽃을 색으로 쓰는 쪽과 잎을 나물로 먹는 쪽이 한 속 안에 함께 있습니다. 맨드라미를 많이 기르는 나라로는 중국·인도·나이지리아가 꼽힙니다.
오늘 할 일은 하나입니다. 올해 심은 것이 관상용 모종이었다면 꽃은 눈으로만 보시고, 다음 봄에 씨앗을 주문할 때 먹을 몫 한 줄을 목록에 따로 적어 두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