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텃밭 가장자리, 사람이 자주 밟고 다니는 흙길에 잎이 땅에 붙어 둥글게 퍼진 풀이 보입니다. 나란한 잎맥이 다섯 줄쯤 도드라지고, 밟혀도 이내 다시 펴집니다. 질경이(Plantago asiatica)입니다. 밭을 갈 때는 뽑아 버리다가도 봄이 되면 나물로 캐러 다시 찾게 되는 풀입니다.
북반구 기준으로 9월은 질경이 씨를 뿌려 두기 좋은 시기입니다. 3~4월과 9월에 씨를 뿌리고 잎은 4~6월에 캡니다. 땅에 붙은 잎으로 겨울을 나기 때문에, 가을에 뿌려 두면 봄 잎이 먼저 올라옵니다.
《동의보감》이 적어 둔 車前子
《동의보감》 초부(草部)에는 車前子(차전자)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습니다. 한자 이름 옆에 '길경이 ᄡᅵ'라는 한글 이름과 '뵈ᄡᅡᆼ이ᄡᅵ'라는 다른 이름이 함께 적혀 있습니다. 성질은 차다고도 하고 평하다고도 했으며, 맛은 달고 짜며 독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름 풀이도 남았습니다. 곧 부이(芣苢)라 하며, 잎이 크고 이삭이 길다고 했습니다. 길가에 잘 나고 소 발자국이 난 자리에서 즐겨 난다 하여 車前이라 부른다고 적었습니다. 채취 시기도 함께 실렸습니다. 음력 5월에 싹을 캐고, 음력 9~10월에 씨를 거둬 그늘에서 말린다고 했습니다. 옛 의서에 남은 기록이며, 오늘의 판단과 같지 않습니다.
같은 책에는 표제에 본체 이름 없이 잎과 뿌리(葉及根)만 묶어 둔 딸림 칸도 있습니다. 즙을 내어 쓴다는 한 대목만 남아 있어, 그 칸만 보고는 어느 풀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의 분석이 잎에서 찾아낸 것
오늘의 성분 분석은 질경이속 잎에서 아우쿠빈(aucubin) 같은 이리도이드 배당체와 플란타마조사이드(plantamajoside)·악테오사이드(acteoside) 같은 페닐에탄오이드 배당체를 확인했습니다. 함량은 채취 시기와 잎의 나이에 따라 차이가 크다는 결과도 함께 나왔습니다. 성분 조성에 관한 분석이며,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겹치는 곳은 캐는 때에 있습니다. 옛 기록이 싹을 캐라고 한 음력 5월은 잎이 아직 어린 때입니다. 잎의 나이에 따라 함량이 달라진다는 오늘의 결과와 견주어 볼 만합니다. 다만 옛 기록은 성질과 맛으로 적었고, 오늘의 분석은 물질 이름과 함량으로 적습니다. 둘이 같은 말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나물로 먹을 때 몸에 들어오는 것은 주로 식이섬유와 무기질, 물에 풀리면 끈끈해지는 점액질 다당입니다.
차전자피와는 다른 풀
식이섬유 보충제로 파는 차전자피는 다른 풀에서 나옵니다. 인도에서 재배하는 Plantago ovata의 씨껍질이며, 들에 나는 질경이 Plantago asiatica와는 종이 다릅니다. 한자 표기가 겹치고 이름도 비슷해 서로 헷갈리기 쉽습니다. 텃밭에서 질경이 잎을 캐 먹는 일과 차전자피를 먹는 일은 갈라서 생각해 주세요.
뿌리고, 데치고, 무치기
기르기는 손이 적게 갑니다. 밟히는 흙에서도 잘 나므로 밭 가장자리 자투리 흙에 씨를 흩어 뿌려 두세요. 북반구 기준 3~4월이나 9월에 뿌리고, 잎이 손바닥만 해지는 4~6월에 바깥 잎부터 잘라 냅니다. 가운데 순을 남겨 두면 한 포기에서 여러 번 거둘 수 있습니다. 심는 달과 거두는 달은 질경이 도감 칸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먹을 때는 먼저 데칩니다. 잎맥이 굵고 심줄이 질기니 소금 넣은 물에 데쳐 찬물에 헹구고, 물기를 꼭 짜 주세요. 물기가 남으면 양념이 겉돕니다. 맛이 심심한 편이라 된장에 무치거나 들깨가루를 넉넉히 넣고 볶으면 잘 맞습니다. 들깨의 기름기가 질긴 심줄을 덜 도드라지게 합니다.
- 된장국: 데친 잎을 잘게 썰어 넣습니다. 굵은 잎맥이 덜 걸립니다.
- 전: 밀가루 반죽을 되직하게 잡아 섞어 부칩니다. 반죽이 묽으면 잎이 흩어집니다.
- 묵나물: 데쳐 말려 두었다가 겨울에 물에 불려 한 번 더 삶아 씁니다.
오늘 밭에 나가면 길 쪽 흙 한 뼘을 비워 씨를 뿌려 두세요. 봄에 먼저 올라오는 어린잎을 데쳐 된장에 무치면 한 접시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