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베란다 화분의 치자나무에 주황빛 열매가 달렸습니다. 6~7월에 여섯 갈래로 벌어진 흰 꽃을 피우고 향이 멀리 가던 나무입니다. 열매는 북반구 기준 10~11월에 익습니다. 푸르던 열매가 주황빛으로 바뀌면 거둡니다.
치자나무(Gardenia jasminoides)는 꼭두서니과의 늘푸른 떨기나무입니다. 겨울이 온화한 동아시아 난대에서 자랍니다. 중국이 주산지이고 일본과 한국에서도 많이 기르며, 타이완에는 자생합니다. 생육 적온은 16~28℃입니다. 영하 10℃ 안팎까지는 견디지만 그보다 추워지면 가지가 얼어 죽습니다. 한국에서는 남해안이 밖에서 겨울을 날 수 있는 북쪽 끝입니다. 남해안보다 추운 곳이라면 화분에 심었다가 추위가 오기 전에 실내로 들여 보세요. 흙이 중성이 되면 잎이 노래지므로 약산성 흙을 골라 주세요.
열매를 쪼개 노란 물 내기
치자 열매는 씹어 먹기보다 주로 우린 물로 음식에 들어갑니다. 열매의 노란색은 크로신(crocin)·크로세틴(crocetin) 같은 카로티노이드(carotenoid) 계열 색소에서 옵니다. 이 색소는 물에 잘 녹아서 예부터 옷과 음식에 물을 들이는 데 쓰여 왔습니다. 밥물이나 반죽 물에 섞기 쉬운 것도 이 성질 덕분입니다. 열매에 든 게니포사이드(geniposide)는 쓴맛에 관여합니다. 그래서 우린 물은 마실 거리보다 색을 내는 재료로 다룹니다. 제니핀(genipin)이라는 성분은 아미노산과 만나면 푸른색을 냅니다. 이 성질 덕에 같은 열매에서 푸른 색소도 얻습니다.
먼저 열매를 반으로 쪼개 미지근한 물에 담가 두세요. 열매 1~2개에 물 200ml로 시작합니다. 노란 물이 진하게 나오면 체에 밭쳐 씨와 껍질 조각을 걸러 냅니다. 색이 옅으면 열매를 하나 더 넣어 보세요.
밥과 떡 — 밥물과 반죽 물을 바꾸기
가장 손쉽게는 밥에 씁니다. 밥을 지을 때 맹물 대신 우린 물을 밥물로 그대로 붓습니다. 노란빛이 쌀알에 고르게 듭니다. 열매에는 리날로올(linalool) 같은 향기 성분이 들어 있지만 밥에는 향이 거의 남지 않아서 어느 반찬 옆에 놓아도 무난합니다. 색이 너무 진하면 우린 물을 맹물로 반쯤 묽혀 보세요.
노란 밥은 쌈(ssam, 잎채소에 밥과 반찬을 얹어 싸 먹는 법)으로 먹어도 좋습니다. 텃밭에서 딴 상추나 깻잎(들깨 잎)으로 싸면 초록 잎 안에 노란 밥이 담깁니다. 떡(tteok, 주로 쌀가루를 쪄서 만드는 음식)도 같은 요령으로 만듭니다. 쌀가루에 물을 줄 때 우린 물을 넣으면 노란 떡이 됩니다.
단무지와 전 — 절임물과 부침 반죽
가을 텃밭에서 무를 거뒀다면 단무지(danmuji, 무를 노랗게 절인 반찬)를 담가 보세요. 무를 절일 때 절임물에 우린 물을 섞으면 노란색이 듭니다. 공장에서 단무지를 만들 때도 오래전부터 치자를 넣어 왔습니다. 절임물에서는 색이 천천히 배므로 하루 이상 두고 꺼냅니다.
전(jeon, 반죽을 입혀 기름에 부친 음식)에도 잘 어울립니다. 부침 반죽을 갤 때 우린 물을 섞으면 노란 전이 됩니다. 기름에 지져도 색이 크게 빠지지 않고, 반죽에 소금 간을 하면 색이 더 또렷해 보입니다. 애호박이나 부추를 썰어 넣으면 노란 바탕에 초록빛이 섞입니다.
몸에 들어가는 양과 옛 기록
밥물이나 반죽에 섞는 치자 물은 색이 들 만큼만 연하게 씁니다. 크로신 색소를 분석한 결과는 노란색이 어디서 오는지 알려 줄 뿐,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동의보감》은 목부(木部)에 치자(梔子)를 싣고 성질이 차고 맛이 쓰며 독이 없다고 적었습니다. 약에는 껍질이 얇고 둥글며 작은 산치자(山梔子)를 쓰되, 모서리가 일곱에서 아홉인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이는 옛 의서의 기록이며 현대 의학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다만 게니포사이드를 고용량으로 투여한 동물실험에서 간에 이상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래서 열매를 진하게 달여 오래 먹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음식에 색을 내는 연한 물과 약처럼 진하게 달인 물은 따로 생각해 주세요.
오늘 열매 한 알을 반으로 쪼개 미지근한 물 200ml에 담가 두었다가 저녁 밥물로 부어 보세요.
출처: 《동의보감》 木部 梔子 · 국립수목원 국가표준식물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