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말 텃밭에서는 한여름에 주황 꽃잎을 뒤로 말고 피었던 참나리가 꽃을 모두 떨굽니다. 잎겨드랑이마다 달렸던 검은 주아(줄기에 생기는 작은 알눈)는 하나둘 흙으로 떨어져 새 포기가 됩니다. 그동안 땅속에서는 비늘줄기가 굵어집니다. 참나리에서 먹는 부위는 이 비늘줄기입니다.
참나리는 중국이 주산지이고 일본에서도 많이 기르며, 한국과 러시아에서는 산과 들에 저절로 자랍니다. 이 비늘줄기를 무엇과 함께 먹으면 좋은지 차례로 살펴봅니다.
비늘줄기와 옛 기록
비늘줄기는 얇은 조각이 여러 겹 포개져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이 뿌리가 마늘처럼 수십 쪽이 겹쳐 나고 백 조각이 포개져 자란다고 적었습니다. 요리에는 조각을 한 장씩 떼어 낸 갈래를 씁니다. 비늘줄기에는 전분이 저장되어 있어 익히면 부드러워지고 단맛이 옅게 납니다. 다만 스테로이드 사포닌이 쓴맛과 관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쓴맛을 어떻게 다룰지가 곁들일 음식을 고르는 기준이 됩니다.
같은 책 초부(草部)는 백합(百合)의 성질이 평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적고, 조금 독이 있다고도 한다는 말을 나란히 남겼습니다. 또 꽃이 노랗고 검은 반점이 있으며 잎이 가늘고 잎 사이에 검은 씨가 달린 나리는 약에 넣지 못한다고 갈라 두었습니다. 잎겨드랑이의 주아로 보아 이것이 참나리에 해당합니다. 약으로는 꽃이 흰 나리를 더 쳤던 셈입니다. 옛 의서의 기록이며 현대 의학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밥·찜·조림에 넣는 갈래는 모두 익혀 먹습니다.
밥과 죽 — 끓기 시작한 뒤에 넣기
가장 쉽게는 쌀에 섞어 짓습니다. 떼어 낸 갈래를 쌀과 함께 안치면 부드럽게 익고, 은은한 단맛이 밥물에 배어납니다. 그러나 오래 끓이면 갈래의 모양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밥물이 끓기 시작한 뒤에 갈래를 올려 보세요. 죽을 쑬 때도 쌀알이 충분히 퍼진 다음 마지막에 넣으면 모양이 남습니다. 나리 비늘줄기에는 점질 다당류가 들어 있다고 알려져 있어, 죽이 조금 더 매끄러워질 수 있습니다.
닭·전복 찜 — 대추·밤과 한 냄비에
국물이 있는 찜에 넣으면 갈래에 국물이 뱁니다. 닭이나 전복을 찔 때 대추·밤과 함께 넣는 방법이 오래전부터 쓰였습니다. 여기서도 갈래를 넣는 때를 늦춥니다.
- 닭 또는 전복을 대추·밤과 함께 먼저 찝니다.
- 재료가 거의 익으면 불을 끄기 10분쯤 전에 갈래를 넣습니다.
- 갈래가 부드러워지면 불을 끕니다.
꿀 조림 — 쓴맛을 줄여 오래 두기
쓴맛이 거슬린다면 꿀에 조려 보세요. 갈래를 끓는 물에 먼저 데친 뒤 꿀을 넣고, 약한 불에서 물기를 날리며 조립니다. 센 불에서는 꿀이 먼저 탈 수 있으니 불을 낮게 둡니다. 꿀에 조린 갈래는 쓴맛이 줄고 오래 둘 수 있습니다. 다 조린 뒤에는 식혀서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합니다.
심기 전에 살필 것
텃밭 참나리로 이런 음식을 하려면 다음 달부터 준비합니다. 10~11월에 비늘줄기를 심고 이듬해 여름에 꽃을 봅니다. 생육 적온은 15~25℃이고, 여름이 서늘하며 물이 잘 빠지는 자리에서 잘 자랍니다. 비늘줄기는 마르는 것보다 젖는 것에 훨씬 약해서, 장마에 물이 며칠씩 고이면 그해에 썩습니다. 겨울 추위는 땅속 비늘줄기로 넉넉히 넘깁니다. 심은 해에는 캐지 않고, 두세 해를 키워 알이 굵어진 뒤 잎이 마르는 11월 무렵에 캡니다.
고양이를 기르는 집에서는 참나리를 심지 않습니다. 백합속(Lilium) 식물은 꽃·잎·꽃가루는 물론 꽃병에 담긴 물까지 고양이에게 급성 신부전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캐 온 비늘줄기를 다듬을 때도 고양이가 닿지 않는 곳에서 하세요.
오늘은 텃밭에서 비가 온 뒤에도 물이 고이지 않는 자리를 한 곳 골라 두세요. 다음 달 그 자리에 비늘줄기를 묻으면, 두세 해 뒤 11월에 밥솥과 찜 냄비에 넣을 갈래를 캘 수 있습니다.
출처: 《동의보감》 草部 百合 · 농사로 · 국가생물종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