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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지치 뿌리의 자줏빛 — 《동의보감》의 자초와 오늘의 시코닌

옛 의서는 자줏빛 염료 풀로 적었고, 지금의 분석은 붉은 색소와 함께 조심할 성분을 찾았습니다.

북반구 텃밭에서 10월이 되면 한쪽에 심어 둔 지치 잎이 누렇게 시들어 갑니다. 봄에 씨를 뿌린 지치는 이맘때 뿌리를 거둡니다. 호미로 흙을 걷어 내면 검붉은 뿌리가 드러나고, 맨손으로 쥐면 손끝에 자줏빛이 묻어납니다. 학명 Lithospermum erythrorhizon의 뒷부분 erythrorhizon도 그리스어로 '붉은 뿌리'라는 뜻입니다.

《동의보감》이 적은 자초

허준이 엮어 1613년에 펴낸 조선(한국의 옛 왕조)의 의서 《동의보감》은 이 뿌리를 초부(草部)에 자초(紫草)로 올리고, 한글 이름 '지치'를 곁에 달았습니다. 자초라는 이름부터 '자줏빛 풀'이라는 뜻입니다. 성질은 차다고 했고, 평하다는 설도 남겼습니다. 맛은 쓰다고 했고, 달다는 설도 덧붙였습니다. 독은 없다고 적었습니다. 산과 들 곳곳에 난다고 했으며, 천을 자주색으로 물들이던 그 풀이라고 밝혔습니다.

손질법도 남아 있습니다. 음력 3월(양력으로 대개 4월 무렵)에 뿌리를 캐어 그늘에 말리고, 쓸 때는 술로 씻는다고 했습니다. 지금 텃밭에서는 가을에 캐므로, 캐는 때부터 옛 기록과 어긋납니다. 여기까지는 옛 의서의 내용이며, 오늘의 의학 판단과는 같지 않습니다. 원문 풀이는 호미클럽 동의보감의 지치 항목에 따로 옮겨 두었습니다.

출처: 허준, 《동의보감》 탕액편 초부 「자초」.

붉은빛을 내는 성분, 시코닌

지치 뿌리껍질에서 시코닌(shikonin)과 아세틸시코닌(acetylshikonin)을 분리했다는 보고가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두 성분은 나프토퀴논(naphthoquinone) 계열에 속하는 붉은 색소로, 물보다 알코올과 기름에 잘 녹습니다. 캔 뿌리를 만진 손이 물로 잘 씻기지 않는 것도 이 성질 때문일 것입니다.

다만 이 분석은 색소가 무엇인지 밝힌 것입니다. 병을 막거나 고친다는 근거로 쓸 내용은 담겨 있지 않습니다.

옛 기록과 지금의 분석, 같은 점과 다른 점

두 기록이 겹치는 곳은 색과 술입니다. 《동의보감》이 염료로 쓰던 풀이라고 적은 내용은 뿌리에 붉은 색소가 들어 있다는 분석과 맞습니다. 뿌리를 술로 씻는다는 손질법도 시코닌이 알코올에 잘 녹는 성질과 이어 볼 수 있습니다. 옛사람들이 그 성질을 알고 술을 골랐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독에 관한 판단은 다릅니다. 《동의보감》은 독이 없다고 했지만, 지금의 성분 목록에는 피롤리지딘 알칼로이드(pyrrolizidine alkaloids)도 올라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이 물질군이 식품에 남는 양을 규제합니다. '성질이 차다', '맛이 쓰다' 같은 옛 분류는 성분 분석과 그대로 견줄 수 있는 말이 아니어서, 어느 쪽이 맞는지 가리기 어렵습니다.

기르고, 거두고, 물들여 보세요

북반구 기준 3~4월에 씨를 뿌리고 10~11월에 뿌리를 거둡니다. 뿌리를 얻는 작물이니 물이 고이지 않는 흙에 심어 보세요. 뿌리가 오래 젖어 있으면 상하기 쉽습니다. 캘 때는 장갑을 끼고, 흙을 털어 낸 뿌리를 그늘에 널어 말려 보세요. 《동의보감》도 그늘에 말린다고 했습니다. 달별 일정과 성분은 호미클럽 작물 도감의 지치 항목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말린 뿌리는 먹을거리보다 색을 내는 재료로 쓰기를 권합니다. 피롤리지딘 알칼로이드가 들어 있으니, 뿌리를 차로 달이거나 음식에 넣어 자주 먹는 일은 피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물을 들일 때는 이렇게 해 보세요.

  • 기름: 말린 뿌리를 기름에 담가 두면 붉은빛이 배어납니다. 연고와 화장품 재료도 이렇게 만들어 왔습니다.
  • 염색: 잘게 부순 뿌리를 따뜻한 알코올이나 잿물(재를 우린 물)에 우리면 자줏빛이 나옵니다. 매염제(색을 천에 고정하는 재료)에 따라 자주에서 붉은보라까지 색이 달라집니다.
  • 술: 한국 남서쪽 섬 진도의 홍주(hongju, 붉은 증류주)는 증류한 소주(soju)를 지치 뿌리에 통과시켜 붉은빛을 얻습니다. 뿌리를 오래 담가 두기보다 술을 흘려 통과시키는 쪽이 빛이 맑습니다.

오늘 캔 지치 뿌리를 그늘에 말렸다가, 한 토막을 작은 병의 식용유에 담가 두세요. 기름이 붉게 물드는 모습에서 시코닌이 기름에 녹는다는 분석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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