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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ergei Starostin on Pexels

동의보감

순무, 동의보감이 본 건강

사철 거두는 든든한 뿌리채소, 동의보감은 위를 열고 기운을 돕는 채소로 보았습니다.

텃밭 한구석의 순무

호미님, 가을바람이 선선해질 무렵 텃밭 한구석에서 순무를 뽑아 본 적 있으신가요. 흙을 털어내면 통통한 흰 뿌리가 드러나고, 잎은 잎대로 푸르게 살아 있어 어느 한 곳 버릴 데가 없는 채소입니다. 봄에는 갓 올라온 새싹을, 여름에는 잎을, 가을에는 줄기와 뿌리를 차례로 거둘 수 있으니 텃밭 살림에 이만큼 손이 덜 가는 채소도 흔치 않습니다.

순무는 김치로 담그면 시원하고, 국에 넣으면 무처럼 달큰한 국물을 냅니다. 생으로 얇게 썰어 먹어도 아삭한 맛이 좋지요. 강화도처럼 순무로 이름난 고장에서는 동치미며 깍두기에 두루 넣어 겨우내 먹기도 합니다. 무와 닮았으되 무보다 단맛이 도드라지고 살이 단단해, 익혀도 쉬이 무르지 않는 점이 텃밭 농부에게는 또 하나의 장점입니다. 식탁에 자주 오르는 이 흔한 뿌리채소를 옛 의서는 어떻게 보았는지, 오늘은 동의보감의 기록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동의보감은 이렇게 보았습니다

동의보감은 순무를 만청(蔓菁)이라 부르며, 맛이 달고 쓰며 성질이 따뜻하고 독이 없다(性溫, 味甘, 無毒)고 적었습니다. 따뜻한 성질을 지닌 채소로 분류한 셈입니다.

주된 쓰임으로는 위를 열어 음식을 내리고(消食下氣) 오장을 이롭게 한다(主利五藏)고 보았습니다. 먹은 것이 잘 내려가도록 돕고 속을 편하게 한다는 관점입니다. 여기에 황달을 다스리고(療黃疸) 술독을 푸는 데 썼다는 기록이 더해집니다. 몸을 가볍게 하고 기운을 돕는다(輕身益氣)는 표현도 함께 나옵니다.

동의보감은 순무가 사철 자라는 점을 특히 눈여겨보았습니다. 봄에는 싹을, 여름에는 잎을, 가을에는 줄기를, 겨울에는 뿌리를 먹을 수 있고, 뿌리는 땅속에서 겨울을 나며 마르지 않고 봄에 다시 돋는다고 적었습니다. 흉년에 대비할 만한 채소이자 채소 가운데 가장 이로운 것이라 했고, 늘 먹으면 사람을 살찌고 튼튼하게 한다(常食之, 令人肥健)고 보았습니다. 여러 채소 중에서 이로움은 있고 해로움은 없어 오래 먹기에 가장 알맞다(有益無損, 最宜長服)는 말까지 덧붙였으니, 옛사람들이 순무를 어지간히 아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씨앗인 만청자(蔓菁子)에 대해서도 따로 기록이 있습니다. 성질이 따뜻하고 기를 내리며 눈을 밝게 한다(下氣明目)고 보았고, 황달을 다스리고 소변을 잘 통하게 하며, 찐 뒤 볕에 말려 오래 먹는 법을 적어 두었습니다. 뿌리뿐 아니라 씨까지 두루 쓴 채소였던 셈입니다.

오늘의 영양학과 견주면

순무는 무, 갓과 같은 십자화과 채소입니다. 이 무리의 채소에는 글루코시놀레이트라는 성분이 들어 있는데, 항산화나 해독과 관련해 자주 거론되는 성분입니다. 다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근거는 아직 제한적이어서, 특정 효능을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동의보감이 순무를 두고 위를 열어 음식을 내린다고 본 대목은, 채소를 곁들이면 식사가 한결 편해진다는 오늘의 식생활 상식과 멀지 않게 읽힙니다. 술독을 푸는 데 썼다는 기록 역시 옛사람들이 순무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보여 주는 전통의 관점으로 받아들이시면 좋겠습니다. 씨앗을 두고 눈을 밝게 한다고 본 기록도, 효능을 그대로 믿기보다 만청자를 따로 갈무리해 약재로 쓰던 옛 살림의 한 자락으로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옛 기록과 지금의 영양학이 같은 말을 한다기보다,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채소를 바라본다고 여기시면 무리가 없습니다.

텃밭에서 식탁으로

호미님, 순무는 거두는 시기에 따라 부위를 달리 즐기는 재미가 있습니다. 어린 잎은 데쳐 나물로, 줄기는 김치나 장아찌로, 뿌리는 국이나 생채로 올려 보세요. 동의보감이 성질을 따뜻하다고 본 채소이니, 추운 계절 국물 요리에 넣으면 속을 데우는 한 그릇이 됩니다.

다만 아무리 이로운 채소라도 한 가지만 과하게 드시기보다 여러 채소와 두루 곁들이시는 편이 낫습니다. 평소 드시는 약이 있거나 몸 상태가 특별하다면, 식이로 무언가를 바로잡으려 하기보다 전문가와 상의하신 뒤 즐기시길 권합니다. 텃밭에서 막 뽑은 순무 한 뿌리가 식탁을 든든하게 채워 주는 계절, 호미님의 밥상에 순무가 자주 오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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