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this page in English →

Photo by Nothing Ahead on Pexels

건강

사인, 씨알의 향이 몸에 닿기까지

향을 지닌 정유는 껍질보다 씨알에 많습니다. 쓰기 직전에 빻고, 불을 끄기 5분쯤 전에 넣어 보세요.

서리가 오기 전 텃밭에서 무와 대파를 거둔 날, 덩어리 고기를 냄비에 올리고 삶는 물에 넣을 향신료를 고릅니다. 팔각과 계피 옆에 부드러운 돌기로 덮인 작은 타원형 열매가 든 봉지가 놓여 있다면, 그 열매가 사인입니다.

사인은 생강과에 속하는 풀의 열매 속 씨알로, 한약재 가게에서는 축사인(縮砂仁)이라는 이름으로도 팝니다. 말린 열매의 껍질을 벗기면 갈색에서 검은빛이 도는 씨가 세 덩이로 뭉쳐 나옵니다. 연평균 19~22℃에 비가 잦은 아열대 숲 그늘에서 자라는 열대성 풀이라, 서리를 견디지 못하고 3℃ 아래에서는 잎이 상합니다. 생육 적온은 22~28℃이고 햇볕을 직접 받는 곳에서는 자라지 않아 큰 나무 아래에서 기릅니다. 원산지인 중국과 베트남·라오스에서 주로 거두며, 서리가 내리는 지역에서는 말린 열매를 사서 씁니다.

씨알 속 정유

사인의 향 대부분은 정유(essential oil)라는 휘발 성분 무리가 냅니다. 사인의 정유를 분석해 보니 보르닐아세테이트(bornyl acetate)와 장뇌(camphor) 같은 성분이 나왔습니다. 보르닐아세테이트가 서늘하고 달큼한 향을 내고, 장뇌가 톡 쏘는 향을 더합니다.

같은 분석에는 정유가 껍질보다 씨알 쪽에 몰려 있다는 결과도 실렸습니다. 껍질은 주로 섬유질로 이루어진 부위라 손질할 때 비벼 내 버립니다. 그래서 향을 얻으려면 껍질 안쪽의 씨알을 써야 합니다.

코와 혀에 먼저 닿습니다

사인이 몸에 처음 닿는 곳은 코와 혀입니다. 정유는 쉽게 휘발하는 성분이라 씨알을 빻는 순간 향이 퍼집니다. 입에 넣으면 매운맛이 남습니다. 덩어리 고기를 삶을 때 팔각·계피와 함께 넣으면 누린내가 가려지는 것도 이 향이 더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도감에 실린 분석은 향에 관한 것입니다. 사인을 먹은 뒤 몸 안에서 무엇이 달라지는지 수치로 보여 주는 자료는 도감에 아직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 말할 수 있는 범위는 음식의 냄새를 가리고 향을 더하는 데까지입니다. 그 이상의 효과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동의보감》이 남긴 축사밀

조선 시대 의서 《동의보감》은 풀 항목인 초부(草部)에 사인을 축사밀(縮砂蜜)로 실었고, 사인(砂仁)이라는 딴 이름도 함께 적었습니다.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매우며 독이 없다고 했습니다. 생김새는 백두구(白豆蔲)를 닮았으나 빛이 조금 검고 익지(益智)를 닮았다고 했으며, 음력 7~8월에 거둔다고 적었습니다.

같은 책은 손질법도 남겼습니다. 약한 불에 볶아 향을 낸 뒤 껍질을 비벼 내고 알맹이만 찧어 쓰라는 내용입니다. 향을 지닌 부위가 씨알이라는 지금의 분석과 들어맞는 기록입니다. 다만 성질이 따뜻하다는 서술은 옛 의서의 분류이며, 오늘날의 기준과는 다릅니다.

빻는 때와 넣는 때

씨알을 빻아 두면 정유가 공기 중으로 빠져나가 향이 약해집니다. 그러니 통열매로 사 두고, 쓰기 직전에 필요한 만큼만 껍질을 벗겨 보세요. 옛 손질법을 따르려면 마른 팬에 약한 불로 향이 날 때까지 볶은 뒤, 손바닥으로 껍질을 비벼 내고 알맹이를 절구에 찧습니다.

  • 고기 삶기: 팔각·계피와 함께 쓰되 사인은 다른 향신료보다 늦게 넣어 보세요. 무명 주머니에 담아 두면 건지기 쉽습니다.
  • 국물과 달임: 오래 끓이면 정유가 빠져 향이 남지 않습니다. 불을 끄기 5분쯤 전에 넣고 뚜껑을 덮어 두세요. 한의학에서 사인을 나중에 넣어 온 것도 같은 이유라고 전해집니다.
  • 보관: 껍질을 벗기지 않은 통열매 상태에서 향이 가장 오래 남습니다. 봉지를 뜯은 뒤에는 밀폐 용기에 옮겨 서늘하고 마른 곳에 두고, 오래 보관할 것은 냉동실에 넣으세요.

오늘 고기를 삶는다면 사인 몇 알의 껍질을 벗겨 씨알만 빻고, 불을 끄기 5분 전에 냄비에 넣어 보세요. 벗겨 낸 껍질과 빻은 씨알의 냄새를 차례로 맡아 보면 정유가 어느 쪽에 많은지 코로 알 수 있습니다.

이 글 공유하기
0%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