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님, 가을이 깊어지면 텃밭 한쪽 너른 잎 아래로 토란이 굵어집니다. 손으로 흙을 헤치면 어미알(토란머리) 둘레에 자잘한 새끼알이 옹기종기 붙어 나오는데, 동의보감도 바로 이 모습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가운데에서 싹이 올라온 것을 토란머리(芋頭), 그 사면에 붙어 자란 것을 토란알(芋子)이라 불렀습니다. 옛사람들은 토란을 토지(土芝)라 불렀고, 우리 풍속에서는 토련(土蓮)이라고도 했습니다. 흙에서 나는 연꽃이라니, 캐낸 토란을 손에 쥐어 보면 그 이름이 꽤 어울립니다.
저녁상에 올라오는 토란국 한 그릇은 명절의 풍경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흔한 작물을 동의보감은 어떻게 보았을까요. 호미님과 함께 옛 기록을 천천히 펼쳐 보겠습니다.
동의보감은 이렇게 보았습니다
동의보감은 토란(土芝)의 성질을 평(平)하다고 적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차다(冷)는 견해도 함께 실어, 두 가지 기록을 나란히 남겼습니다. 맛은 매운맛(辛)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붙습니다. 생것일 때는 독이 있어 날로는 먹지 못하고(生則有毒), 잘 익히면 독이 사라져 오히려 보익(補益)하는 바가 크다고 했습니다(熟則無毒, 甚補益). 같은 토란이라도 익히기 전과 후가 전혀 다른 식재료라고 본 셈입니다.
익힌 토란의 효능으로 동의보감은 장과 위를 넓혀 주고(寬腸胃), 살과 피부를 채워 주며(充肌膚), 속을 매끄럽게 한다(滑中)고 적었습니다. 이때 약기운은 비(脾)·위(胃)·대장으로 향한다고 보았습니다. 회복기의 환자나 노약자, 산모에게 부드러운 보양식으로 여겨진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위장의 점막을 부드럽게 다스리고, 풍부한 점액질로 변을 부드럽게 통하게 한다고 본 것입니다. 살결을 보하고 살을 채운다는 대목은, 몸이 축났을 때 기력과 피부를 함께 돌본다는 옛 관점을 담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토란을 붕어와 함께 끓여 국으로 만들면 더욱 좋다(和鯽魚作羹, 尤良)는 구체적인 조리법까지 일러 두었습니다.
잎에 대한 기록도 따로 있습니다. 토란잎은 성질이 차고(冷) 독이 없으며, 답답함을 풀고(除煩) 설사를 멎게 한다(止瀉)고 보았습니다. 또 임신부의 태동(胎動)과 가슴이 답답한 증상을 다스리는 데 쓰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다만 동의보감은 밭에 심어 기른 토란은 먹을 수 있으나, 들에서 자란 야생 토란(野芋)은 독이 있어 먹지 못한다고 분명히 갈라 두었습니다.
오늘의 영양학과 견주면
동의보감이 말한 "장과 위를 넓혀 속을 매끄럽게 한다"는 표현은, 오늘날 우리가 토란에서 떠올리는 특유의 미끈한 점액질과 자연스레 겹쳐집니다. 토란을 손질할 때 느껴지는 그 끈적임이 식이섬유와 점액질에서 비롯되는데, 동의보감의 통변(通便) 관점과 현대의 식이섬유 상식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셈입니다.
토란은 주로 탄수화물을 내는 뿌리채소로, 부드럽게 익혀 먹기 좋은 순한 식재료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의보감이 회복기의 보양식으로 본 것과, 오늘날 토란을 소화에 부담이 적은 음식으로 여기는 일상의 감각이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다. 물론 옛 기록은 옛 기록의 언어로 읽어야 합니다. 동의보감의 "보익한다"는 말을 현대 의학의 치료 효과로 곧장 옮길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익혀 먹으면 순하고 보하는 음식이라는 오래된 관점은, 지금의 식탁에서도 토란을 대하는 마음과 닮아 있습니다.
텃밭에서 식탁으로
토란을 가장 흔히 만나는 방법은 역시 토란국입니다. 동의보감이 일러 둔 대로 다시마나 생선과 함께 맑게 끓이면 명절상의 그 맛이 됩니다. 토란찜이나 토란조림도 좋고, 잎자루인 토란대는 들깨국이나 육개장에 넣어 즐깁니다.
다만 호미님께 꼭 당부드릴 점이 있습니다. 동의보감이 거듭 강조했듯 토란은 반드시 익혀서 드셔야 합니다. 생토란의 점액에는 옥살산 칼슘 결정이 들어 있어, 맨손으로 만지면 가렵고 입에 닿으면 아립니다. 손질할 때는 장갑을 끼거나 식초 푼 물에 잠시 담가 두면 한결 수월합니다. 위장이 약하거나 소화가 더딘 분, 신장결석이 있는 분은 양을 조절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흙에서 나는 연꽃, 토란. 텃밭에서 캐낸 동그란 알 하나에 옛사람의 지혜와 오늘의 식탁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번 가을, 토란 한 솥 부드럽게 끓여 보시면 어떨까요, 호미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