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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초피 — 혀에서 시작하는 얼얼함

9월에 거두는 남부의 향신 나무, 산쇼올과 정유가 몸에 하는 일

9월, 텃밭 가장자리 초피나무에 열매가 붉게 여뭅니다. 열매껍질이 얇게 갈라지고 까만 씨가 비치면 거둘 때입니다. 가지를 당기려다 손끝이 따끔합니다. 마디마다 가시가 두 개씩 마주 붙어 있어서입니다. 산초나무는 가시가 이렇게 짝을 지어 붙지 않으니, 두 나무를 가릴 때 먼저 볼 곳이 이 가시입니다. 한국 남부에서는 초피나무를 제피라고도 부릅니다.

열매를 거두려면 암나무를 심습니다

초피나무는 운향과 낙엽 나무로,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습니다. 열매껍질을 쓰려면 암나무를 심어야 하고, 잎만 쓸 생각이면 가리지 않아도 됩니다. 볕이 잘 드는 자리일수록 열매가 많이 달립니다. 물이 고이는 자리에서는 뿌리가 금세 상하니, 비탈 가장자리나 물이 잘 빠지는 흙에 심어 보세요.

생육 적온은 15~25℃이고 5~30℃ 사이에서 자랍니다. 겨울 추위를 어느 정도 견디지만 찬 바람을 그대로 받는 자리에서는 가지가 마릅니다. 담이나 다른 나무가 바람을 막아 주는 자리면 좋습니다. 북반구 기준으로 3~4월에 묘목을 심고 9~10월에 열매를 거둡니다. 한국과 일본이 주산지이고 중국에서도 많이 기릅니다.

혀가 저릿해지는 이유

초피가루를 조금 입에 넣으면 혀가 얼얼하게 저립니다. 이 얼얼함은 하이드록시-α-산쇼올(hydroxy-α-sanshool)을 비롯한 아마이드 성분에서 옵니다. 고추의 캡사이신(capsaicin)과는 다른 경로로 일어나는 감각입니다. 성분과 감각에 관한 이야기이며, 병을 예방하거나 낫게 하는 일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향은 다른 성분이 맡습니다. 리모넨(limonene)·시트로넬랄(citronellal) 같은 정유가 초피 특유의 향을 이룹니다. 휘발하는 성분이라 뜨거운 국솥에 미리 넣으면 향이 날아가고 얼얼함만 남습니다. 씨에는 지방유가 있어 껍질과 함께 갈면 쓴맛과 기름 냄새가 얹힙니다. 말린 열매는 손으로 비벼 씨를 골라내고 껍질만 갈아 보세요.

《동의보감》이 적어 둔 蜀椒

《동의보감》 木部에는 蜀椒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습니다. 성질이 열하고 맛이 매우며 독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독이 적다고도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수유와 비슷하나 그보다 작고 가시가 있다고 했고, 음력 4월에 꽃 없이 잎 사이에 열매가 맺혀 팥알처럼 둥글고 껍질이 자줏빛 붉은색이라고 남겼습니다. 거두는 때는 음력 8월, 따서 그늘에 말린다고 했습니다. 川椒·巴椒·漢椒로도 부른다고 적었고, 쓸 때는 目을 없애고 입이 다물린 것은 쓰지 말라고 손질까지 일러 두었습니다.

같은 항목은 산지로 이름을 갈랐습니다. 사천에서 나는 것을 蜀椒·川椒라 하고, 관섬에서 나는 것을 秦椒라 했습니다. 秦椒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맵다고 했습니다. 쓰다고도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잎과 줄기와 열매가 蜀椒와 비슷하나 맛이 짧고 열매가 잘며 빛깔이 누렇고 검다고 구별해 두었습니다. 거두는 때는 음력 8~9월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옛 기록의 蜀椒가 오늘의 어느 종을 가리키는지는 기록마다 다릅니다. 중국 본초는 蜀椒·川椒를 흔히 화초(Zanthoxylum bungeanum)로 봅니다. 한국 기록에는 초피나무에 이 이름을 붙인 사례가 있습니다. 옛 의서의 기록이며 현대 의학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손끝으로 집을 만큼이면 넉넉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넣어야 할까요. 향이 강한 가루라 양이 조금만 넘어도 다른 재료 맛이 가려집니다. 국솥에 미리 넣지 말고, 그릇에 담은 뒤 각자 덜어 넣습니다. 먹는 자리에서는 이렇게 챙겨 보세요.

  • 추어탕·민물매운탕 — 민물고기를 끓인 탕에서 나는 흙내를 덮는 데 오래 쓰였습니다. 1인분에 손끝으로 집을 만큼이면 넉넉합니다.
  • 김치·장아찌 — 한국 남부에서는 김치 양념에 초피 잎이나 가루를 넣습니다. 아주 조금이면 되고, 많이 넣으면 김치 맛이 초피 향에 덮입니다. 연한 잎으로 담근 장아찌는 밥반찬으로 씁니다.
  • 두부·나물 무침 — 참기름과 함께 쓰면 향이 고르게 퍼집니다. 무친 뒤 오래 두면 향이 빠지니 바로 드세요. 소금 간을 세게 하지 않아도 맛이 삽니다.

텃밭에 초피나무가 있다면 오늘 붉게 갈라진 열매만 골라 따 보세요. 그늘에서 바싹 말린 다음 씨를 골라내고 껍질만 갈아 작은 병에 담아 두면, 겨울 한철 국그릇마다 손끝으로 한 번씩 덜어 쓸 수 있습니다.

출처: 《동의보감》 木部 蜀椒 ·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 · 농촌진흥청 농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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