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 텃밭 한쪽에서 호로파 꼬투리가 누렇게 마릅니다. 잎은 이미 시들었고, 마른 꼬투리를 손으로 비비면 각진 노란 씨가 여남은 개씩 떨어집니다. 북반구 기준으로 4~5월에 뿌린 씨를 7~8월에 이렇게 거둡니다. 손바닥에 올려 코를 가까이 대면 달큰한 냄새가 옅게 올라옵니다. 카레 냄비에서 맡던 그 냄새죠.
《동의보감》은 이 씨를 어떻게 적었을까요
《동의보감》 草部(초부)에 호로파(葫蘆巴)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습니다.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쓰며 독이 없다고 했습니다. 남번 지방 무의 씨라는 설을 함께 실어 내력을 적었고, 술로 씻어 살짝 볶아 쓴다고 손질법을 적었습니다. 이름 옆의 【唐】 표시는 중국에서 들여오던 재료였음을 알려 줍니다. 콩과 한해살이풀(Trigonella foenum-graecum)의 씨앗이며, 오늘날에는 페누그릭(fenugreek)이라 부르고 인도 카레와 향신료 배합에 씁니다. 다만 이 서술은 옛 의서가 남긴 기록이고, 오늘날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원문과 풀이는 《동의보감》 호로파 항목에서 확인해 보세요.
오늘의 성분으로 다시 보면
향미 분석에서는 호로파의 단 냄새를 소톨론(sotolon)이라는 화합물로 설명합니다. 아주 낮은 농도에서도 감지되며, 인공 메이플 향에도 같은 계열이 쓰입니다. 씨앗에는 물을 만나면 걸쭉해지는 다당류인 갈락토만난(galactomannan)이 들어 있고, 스테로이드 사포닌의 뼈대인 디오스게닌(diosgenin)도 호로파에서 분리되었습니다. 단백질도 씨앗에 저장 성분으로 들어 있습니다.
옛 기록과 오늘이 만나는 곳은 손질입니다. 술로 씻어 살짝 볶으라는 말은 기름에 잠깐 볶아 향을 내는 오늘의 조리 순서와 겹칩니다. 그러나 적는 말이 다릅니다. 옛 의서는 따뜻하다·쓰다처럼 몸으로 느낀 감각을 적었고, 오늘의 분석은 화합물의 이름과 농도를 적습니다. 그래서 옛 항목에 적힌 쓰임을 오늘의 효능으로 옮겨 읽지 않습니다.
냄새가 옮는다는 기록
호로파를 많이 먹으면 땀과 소변에서 메이플 시럽 비슷한 냄새가 난다는 관찰이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수유 중인 사람에게서 이 냄새가 나 다른 원인과 혼동한 사례도 남아 있습니다. 냄새에 관한 관찰이며, 몸에 어떤 작용을 한다는 보고와는 별개입니다. 향신료로 조금 쓰는 것과 많은 양을 꾸준히 먹는 것은 다르니, 양을 늘릴 생각이라면 먼저 전문가와 상의해 보세요.
기르고, 볶고, 곁들이기
씨는 북반구 기준 4~5월에 뿌리고 7~8월에 거둡니다. 꼬투리가 누렇게 마르면 모아 두었다가 손으로 비벼 씨를 받아 보세요. 심는 달과 거두는 달, 궁합이 좋은 재료는 호로파 작물 도감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부엌에서는 기름을 두르고 커민·코리앤더와 함께 살짝 볶아 향을 낸 뒤 재료를 넣습니다. 호로파는 가장 늦게 넣고, 색이 옅게 변하면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인도식 조림에서는 감자나 렌틸콩처럼 맛이 순한 재료와 함께 쓰되, 향이 강하니 양을 적게 잡습니다. 볶아서 곱게 간 씨를 요거트에 조금씩 섞으면 갈락토만난 덕분에 잘 어우러지고 걸쭉해집니다. 넣고 조금 두었다가 맛을 봐 주세요.
오늘 거둔 씨 한 숟가락을 팬에 옅은 갈색이 돌 때까지만 볶아, 저녁 냄비에 가장 늦게 넣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