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와 가지를 걷어 낸 가을 이랑이 비어 있습니다. 북반구 기준 10월은 귀리(Avena sativa)를 뿌리는 달이고, 이때 뿌린 귀리는 이듬해 6~7월에 벱니다. 《동의보감》에는 아침 식탁의 오트밀로 익숙한 이 곡물과 한 무리인 풀이 '귀보리'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습니다.
《동의보감》이 적은 귀보리
《동의보감》은 초부(草部)에 이 풀을 작맥(雀麥)으로 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예전에 귀보리라 불렀고, 연맥(燕麥)이라는 다른 이름도 함께 적었습니다. 성질은 평(平)하고 맛은 달며(甘) 독이 없다고 했습니다. 평은 한의학에서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성질을 가리킵니다.
생김새 기록도 자세합니다. 싹은 밀을 닮았으나 여리고, 알은 광맥(겉보리)을 닮았으나 가늘며, 이삭은 가늘고 길며 성기게 달린다고 했습니다.
다만 이 작맥을 밭에서 기르는 귀리와 다른 야생종 메귀리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호미클럽 도감 풀이도 작맥을 들에서 자라는 귀리 무리의 풀로 설명합니다. 이 내용은 옛 의서의 기록이며 현대 의학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원문 풀이는 동의보감 귀보리 항목에서 읽어 보세요.
출처: 《동의보감》 초부(草部) '작맥(雀麥)'
오늘 재는 귀리의 성분
오늘의 분석은 성질과 맛 대신 성분을 잽니다. 도감에 실린 귀리의 성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 베타글루칸(beta-glucan): 물에 풀리면 점성을 내는 수용성 식이섬유입니다.
- 단백질: 곡물 가운데서는 함량이 높은 편이며, 아베닌(avenin)이 들어 있습니다.
- 아베난쓰라마이드(avenanthramide): 귀리에서 주로 확인되는 폴리페놀(polyphenol)류입니다.
- 지방: 곡물치고 많은 편이고, 리놀레산(linoleic acid) 비율이 높습니다.
베타글루칸의 분자량과 용액 점도를 잰 물성 연구가 있습니다. 연구진은 가공 정도와 조리 시간에 따라 점성이 달라진다고 보고했습니다. 식은 오트밀이 걸쭉해지는 모습은 부엌에서 흔히 봅니다. 이 연구는 그 현상을 설명하는 자료이며, 질병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아베난쓰라마이드는 다른 곡물에서는 거의 검출되지 않고, 귀리의 겨층과 어린 싹에 상대적으로 많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같은 분석은 품종과 재배 조건에 따라 함량 폭이 크다는 결과도 함께 실었습니다.
옛 기록과 오늘의 분석은 어디가 같을까요?
귀리를 독 없이 먹을 수 있는 곡물로 본다는 점은 옛 기록과 오늘이 같습니다. 《동의보감》은 독이 없고 맛이 단 풀로 적었고, 오늘도 귀리는 오트밀과 잡곡밥으로 흔히 먹는 곡물입니다.
다른 점도 있습니다. 《동의보감》의 작맥이 메귀리라면, 오늘 사서 먹는 압착귀리와 같은 식물로 보기 어렵습니다. 옛 기록의 성질과 맛을 지금의 귀리에 그대로 가져다 쓸 때는 이 점을 함께 따져야 합니다. 또 《동의보감》은 성질·맛·생김새를 적었고, 오늘의 분석은 점성과 성분 분포를 잽니다. 두 기록이 다루는 내용이 서로 달라서, 한쪽 기록으로 다른 쪽을 증명하지는 못합니다.
두 기록이 함께 살핀 부위도 있습니다. 옛 기록은 싹의 모양을 남겼고, 오늘의 분석은 아베난쓰라마이드가 어린 싹에 많다고 봅니다. 다만 품종과 재배 조건에 따라 함량이 크게 달라, 집에서 기른 순에 얼마나 들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가을에 뿌려 초여름에 베기
북반구 기준으로 귀리는 10월 가을뿌림도, 3월 봄뿌림도 됩니다. 어느 쪽이든 거두는 달은 6~7월입니다. 겨울 추위가 매서운 지역이라면 3월에 뿌리는 편이 무난합니다. 남반구에서는 여섯 달을 더해 계산해 보세요. 파종 달력은 작물도감의 귀리 항목에서 함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삭까지 기다리기 어렵다면 어린 순부터 길러 보세요. 얕은 화분에 씨를 배게 뿌리고 실내에 두면 7~10일이면 10cm까지 자랍니다. 고양이가 뜯는 캣그라스(cat grass)로 흔히 기르지만, 사람이 먹는 새싹으로도 잘라 씁니다. 한 번 자른 뒤 다시 올라온 순은 힘이 없으니 열흘 간격으로 새 화분에 뿌리는 편이 낫습니다.
식탁에 올리는 법
- 찬 우유·두유에 불리기: 압착귀리를 끓이지 않고 찬 우유나 두유에 하룻밤 담가 두면 부드러워집니다. 베타글루칸이 천천히 풀려 아침이면 걸쭉해지고, 냉장 보관하면 이틀까지는 맛이 유지됩니다.
- 쌀밥에 섞기: 쌀귀리는 껍질이 잘 벗겨져 따로 불리지 않고도 밥에 섞을 수 있습니다. 부피로 쌀 4에 귀리 1 정도가 무난하고, 물은 평소보다 조금 넉넉히 잡습니다. 껍질귀리는 밥용이 아니니 봉지에 적힌 품종을 먼저 확인하세요.
오늘은 빈 화분 하나에 귀리 씨를 배게 뿌려 보세요. 열흘 뒤 잘라 낸 순을 샐러드에 올려 보고, 10월 이랑에 뿌릴 씨앗은 그 뒤에 고르셔도 늦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