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처음 따 먹는 잎
호미님,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텃밭에서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작물이 상추가 아닐까 합니다. 씨를 뿌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잎이 도톰하게 올라오고, 바깥잎부터 한 장씩 따서 먹다 보면 한 포기로도 식탁이 제법 풍성해집니다. 갓 따낸 잎을 흐르는 물에 헹궈 밥 한 술 올려 쌈을 싸 먹는 그 장면은, 한여름 한국 밥상에서 오래도록 이어져 온 풍경입니다.
텃밭을 가꾸다 보면 상추만큼 손이 덜 가면서도 보답이 큰 작물도 드뭅니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잎을 따 줄수록 다시 잎이 올라오니, 한 철 내내 식탁을 책임지는 든든한 식구가 됩니다. 이렇게 흔하게 곁에 두고 먹는 상추를 옛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을까요. 동의보감의 기록을 함께 펼쳐 보겠습니다.
동의보감은 이렇게 봅니다
동의보감은 상추를 와거(萵苣)라는 약재명으로 다루면서, 그 성질을 차다(性冷)고 적었습니다. 한 곳에서는 한(寒)하다고도 했으니, 몸의 열을 식히는 쪽으로 본 셈입니다. 맛은 쓰고(味苦) 약간의 독이 있다(微毒)고 기록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자극은 상추 줄기를 자르면 배어 나오는 흰 즙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효능으로는 근골을 보하고(補筋骨), 오장을 이롭게 하며(利五藏), 가슴에 막힌 기운을 풀어 준다(開胸膈壅氣)고 보았습니다. 또한 경맥을 통하게 하고(通經脉), 사람의 이를 희게 하며 총명하게 하고 잠을 적게 한다(令人齒白聰明少睡)고 적었으며, 뱀에 물린 데를 다스린다(療蛇咬)고도 했습니다.
다만 동의보감은 주의도 함께 남겼습니다. 《입문》을 인용해, 요즘 사람들이 채소로 늘 먹지만 냉(冷)을 앓는 사람이 먹으면 배가 차가워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을 몹시 상하게 할 정도는 아니라고 덧붙였으니, 지나치게 겁낼 것은 아니되 몸이 찬 분은 헤아려 먹으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한편 흰 상추를 가리키는 백거(白苣)도 따로 실려 있는데, 《본초》를 빌려 성질과 맛, 효능이 와거와 같고 모양도 비슷하되 흰 털이 있다고 구분해 두었습니다.
오늘의 영양학과 견주면
동의보감이 상추를 차가운 성질로 보고 가슴의 막힌 기운을 푼다고 한 대목은, 오늘날 상추를 수분이 많고 열량이 낮은 잎채소로 여기는 감각과 멀지 않습니다. 한여름 더위에 입맛이 가실 때 상추쌈 한 접시가 속을 시원하게 풀어 주는 경험을, 호미님도 한 번쯤 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옛 기록이 말한 차가운 성질과 가슴을 트이게 한다는 풀이가, 그 시원한 감각과 자연스럽게 겹쳐집니다. 잎채소답게 수분과 비타민이 더해지니, 옛 기록이 살결을 좋게 한다고 본 결도 가볍게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눈여겨볼 대목은 잠을 적게 한다는 기록과 졸음의 관계입니다. 동의보감의 표현과는 방향이 달라 보이지만, 우리 전통에는 상추를 먹으면 졸음이 온다는 이야기가 오래 이어져 왔습니다. 상추 줄기의 흰 즙에 들어 있는 락투신(lactucin) 같은 성분의 진정 작용이 그 배경으로 이야기되곤 합니다. 옛 기록과 전통, 성분 이야기를 나란히 두고 살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다만 이런 견줌은 어디까지나 전통 관점과 일반 상식을 포개어 보는 것이지, 무엇을 치료한다고 단정할 일은 아니라는 점을 함께 적어 둡니다.
텃밭에서 식탁으로
상추는 역시 생으로 먹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 쌈채로 밥을 싸 먹거나 샐러드로 즐기고, 잎이 많이 나는 철에는 살짝 데쳐 무침으로 변화를 주어도 좋습니다. 줄기에서 나오는 흰 즙은 예부터 약용으로 따로 추출해 쓰기도 했습니다.
먹을 때 한 가지만 헤아려 주십시오. 동의보감이 일러둔 대로 상추는 차가운 성질이라, 위가 약하거나 평소 몸이 차고 설사 기미가 있는 분은 조금 자제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졸음 이야기가 있는 만큼 운전을 앞두고 많이 드시는 것도 피하시고, 거꾸로 잠자리 전에 가볍게 곁들이는 상추쌈은 숙면을 돕는 옛 지혜로 삼아 볼 만합니다.
호미님이 직접 기른 상추 한 잎에 옛 의서의 시선까지 얹어 보니, 늘 먹던 잎채소가 조금 새롭게 다가오시리라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