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한 귀퉁이의 단골손님
호미님, 부추는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참 오래도 함께 가는 작물입니다. 동의보감도 같은 장면을 적어 두었습니다. "한 번 심어 오래 가는 까닭에 부추라 한다"고 풀이하고, 밭 가꾸는 이가 한 해에 서너 번을 베어도 그 뿌리가 상하지 않으며, 겨울에 북을 돋워 두면 봄이 오기 전에 다시 돋아난다고 했습니다. 베어도 또 올라오는 그 끈질김을 옛사람도 눈여겨본 셈입니다.
그러니 부추전 한 접시, 부추무침 한 종지는 텃밭을 가꾸는 호미님에게는 가장 손쉬운 수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흔한 채소를 동의보감은 단순한 반찬 이상으로 적어 두었습니다.
동의보감은 이렇게 보았습니다
동의보감은 부추(韭, 구)의 성질을 따뜻하다고 보았고, 어떤 곳에서는 뜨겁다고도 적었습니다. 맛은 매우며 약간 시고, 독은 없다고 했습니다. 약기운이 가는 곳은 간·신·위로, 특히 신장의 양기(腎陽, 신양)에 작용한다고 보았습니다.
『본초』를 인용한 대목에서는 부추가 오장을 편안히 하고, 위 속의 열을 없애며, 허하고 모자란 것을 보하고,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며, 가슴 속의 답답함(痺, 비)을 풀어 준다고 했습니다. 『단심』을 인용해서는 부추가 가슴 속의 나쁜 피와 막힌 기운을 흩어 주고, 간의 기운을 채워 준다고 적었습니다. 그래서 채소 가운데 이것이 가장 따뜻하면서 사람에게 이로우니 늘 먹는 것이 좋다고 보았습니다.
부추 씨(韭子, 구자)는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 성질이 따뜻하고, 꿈에 정액이 새거나 소변이 뿌연 증상을 다스리며,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고 양기를 도와 준다고 했습니다. 약으로 쓸 때는 살짝 볶아 쓴다고 했습니다. 이런 기록 때문에 부추에는 "기양초"라는 별명이 따라붙어, 신양이 부족해 생긴 증상에 전통적으로 쓰였습니다.
다만 동의보감은 주의도 함께 적었습니다. 부추는 매운 냄새가 유난해서 성품을 기르는 데는 꺼리는 음식이라고 보았습니다. 또 음이 허하고 열이 많은 분, 그러니까 입이 자주 마르거나 열감이 잦은 분은 양을 줄이는 편이 좋다고 전해집니다.
오늘의 영양학과 견주면
동의보감이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고 늘 먹으면 이롭다"고 본 대목을, 오늘의 식탁 관점과 나란히 놓아 보겠습니다. 부추는 흔히 알려지기로 비타민과 무기질이 고루 든 푸른 채소이고, 특유의 매운 향을 내는 황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동의보감이 "매운맛"으로 적은 그 특징이, 오늘날 말하는 향 성분과 같은 자리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물론 옛 기록이 말한 "양기를 보한다"거나 "어혈을 흩는다"는 표현을 현대 의학 용어로 곧장 바꿔 읽을 수는 없습니다. 동의보감의 효능은 그 시대의 몸을 보는 틀 안에서 적힌 것이라, 오늘의 영양학과는 결이 다릅니다. 다만 "따뜻한 채소를 제철에 챙겨 먹으면 몸에 이롭다"는 옛사람의 생활 감각만큼은, 텃밭에서 갓 벤 부추를 식탁에 올리는 호미님께도 그대로 닿는 이야기일 듯합니다.
텃밭에서 식탁으로
동의보감은 부추 먹는 법으로 즙을 짜 마시거나 김치(葅, 저)로 담가 먹는 것을 모두 좋다고 적었습니다. 오늘로 옮겨 보면 데쳐 무침을 하거나, 부추전·부추김치로 즐기는 그 방식 그대로입니다. 씨(韭子)는 약으로 쓸 때 살짝 볶아 환이나 가루로 쓴다고 했으니, 이는 한약 처방의 영역으로 남겨 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몇 가지만 곁들이겠습니다. 동의보감은 꿀과 함께 많이 먹는 것을 금기로 보았습니다. 또 음이 허하고 열이 많은 분, 입마름이나 잦은 코피가 있는 분은 과한 양을 자제하는 편이 좋다고 전합니다. 회복기에 있거나 위장이 약한 분이라면 양념을 조금 줄여 드시기를 권합니다.
텃밭에서 서너 번을 베어도 또 올라오는 부추를, 호미님도 제철마다 가볍게 식탁에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옛 기록이 "늘 먹어도 이롭다"고 적어 둔 채소이니, 손이 닿는 그 자연스러움 자체가 부추의 미덕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