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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무, 동의보감이 본 건강

떡과 만두 곁에 무가 놓이는 데에는 오래된 이유가 있습니다.

텃밭에서 만나는 무

호미님, 가을 텃밭에서 흙을 살살 헤치면 하얗고 통통한 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윗동은 연둣빛으로 햇빛을 받고, 아랫동은 흙 속에서 단단하게 여물어 있지요. 뽑아 들면 흙냄새와 함께 알싸한 매운 기운이 코끝을 스칩니다. 어린 무에서 돋은 새싹, 무순을 솎아 먹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무는 우리 식탁에서 가장 친숙한 작물입니다. 깍두기로, 동치미로, 무국으로, 겨우내 먹는 무말랭이로 모습을 바꿔 가며 일 년 내내 곁에 있습니다. 흙에서 막 올라온 무는 매운 기운이 살아 있고, 김치 속에서 익은 무는 또 다른 깊이를 냅니다. 같은 뿌리 하나가 이렇게 여러 얼굴을 보이는 작물도 드뭅니다. 이렇게 흔하게 먹는 무를 옛 의서는 어떻게 보았을까요.

동의보감은 이렇게 봅니다

먼저 성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무(萊菔)의 성질을 두고는 따뜻하다는 견해와 차다는 견해가 함께 전해 옵니다. 맛은 매운맛과 단맛이 같이 들어 있습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익히면 차가운 성질이 누그러지고 생것은 약간 더 시원하다고 본 점입니다. 같은 무라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몸에 닿는 결이 달라진다고 본 셈입니다.

무의 약기운은 주로 폐(호흡기)와 위(소화기)로 간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가래와 식적, 곧 소화가 안 되어 속에 쌓인 음식 문제에 무를 핵심으로 꼽았습니다.

동의보감이 무에서 가장 먼저 든 효능은 소화를 돕는 일(消食)입니다. 기름지고 무거운 음식, 특히 떡이나 밀가루 음식의 소화를 돕는다고 보았습니다. 한국 식문화에서 떡이나 만두에 무를 곁들여 온 데에는 이런 관점이 깔려 있습니다. 또 기를 내린다(下氣)고 하여, 배에 가스가 차고 답답할 때나 트림과 딸꾹질에 쓰였습니다. 묽은 가래와 기침에는 가래를 삭인다(化痰)고 보았고, 특히 무씨인 내복자(萊菔子)는 한방 호흡기 처방에서 핵심으로 쓰였습니다.

해독 쓰임도 적혀 있습니다. 두부의 독, 면독, 생선 독, 술 독에 무즙을 응급 해독제처럼 썼다고 전합니다. 한 가지 더, 동의보감은 무를 매일 먹으면 머리가 일찍 세는 것을 막고 살결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오늘의 영양학과 견주면

오늘날 영양 상식으로 보아도 무는 가벼우면서 쓸모 있는 채소입니다. 수분이 많고 열량이 낮으며, 비타민 시(C)를 비롯한 영양소를 품고 있습니다. 무에는 소화를 돕는 효소 성분이 들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떡이나 기름진 음식과 무를 함께 먹어 온 옛 습관과 묘하게 맞닿는 지점입니다. 동의보감이 소화를 돕는다(消食)고 본 관점과 현대의 설명이 서로 다른 길에서 비슷한 곳을 가리키는 셈입니다.

가래와 기침에 무를 떠올리는 민간의 습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의보감이 가래를 삭인다(化痰)고 본 대목과, 무씨인 내복자(萊菔子)를 호흡기 처방에 넣어 온 흐름이 오랜 경험으로 이어져 온 셈입니다. 무를 꿀에 재워 두고 떠먹던 옛 가정의 방법도 이런 관점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다만 이 글에서 무가 무엇을 치료한다고 단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동의보감의 기록은 오랜 경험을 정리한 전통의 시선이고, 현대 영양학은 또 다른 잣대로 식품을 바라봅니다. 두 관점을 나란히 놓고 음미하는 정도가 호미님께 알맞은 거리라고 생각합니다.

텃밭에서 식탁으로

무는 먹는 방법이 참 너릅니다. 생으로 아삭하게 썰어 먹거나 즙을 내어 마시고, 김치와 동치미, 깍두기로 발효시켜 두고두고 먹습니다. 시원한 무국을 끓이고, 가을볕에 무말랭이로 말려 겨울 반찬을 마련하기도 합니다. 무씨인 내복자(萊菔子)는 환이나 가루로도 쓰였고, 솎아 낸 어린 무순은 생으로 곁들이면 알싸하니 입맛을 돋웁니다.

마지막으로 동의보감이 일러둔 주의도 함께 전하겠습니다. 동의보감은 무를 인삼이나 지황과 함께 먹지 말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약효가 서로 상쇄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또 위가 약하고 차서 늘 설사 기미가 있는 분이라면 생무와 생즙을 자제하고 익혀 드시는 편이 낫다고 보았습니다. 익히면 차가운 성질이 누그러진다는 앞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호미님, 텃밭에서 갓 뽑은 무 한 뿌리를 손에 쥐고 보면, 그 흔한 채소 안에 이렇게 긴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저녁 떡 한 접시 곁에 무 한 조각을 올려 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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