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물러가고 고추밭 이랑마다 붉은 고추가 하나둘 익어 갑니다. 아침에 딴 풋고추는 된장에 찍어 먹고, 남은 것은 채반에 널어 말립니다. 텃밭을 가꾸는 집이라면 여름 밥상에 고추가 빠지는 날이 드뭅니다.
그 고추를 두고 소화기 암 위험을 살핀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텃밭에서 손수 기른 작물을 아끼는 마음과는 별개로, 어떤 이야기인지 차분히 살펴볼 만합니다.
매운맛을 만드는 성분
고추의 매운맛은 캡사이신에서 나옵니다. 씨가 붙는 흰 속살에 가장 많이 모여 있고, 과육 쪽으로 갈수록 옅어집니다. 캡사이신은 입안과 식도 점막의 온도 감각 수용체와 결합해, 실제 온도가 오르지 않아도 뜨겁다고 느끼게 합니다. 매운 것을 먹으면 침과 위액이 늘고 입맛이 도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같은 고추라도 품종에 따라 매운맛의 세기는 크게 벌어집니다. 오이고추와 꽈리고추는 캡사이신이 적어 생으로 먹기 좋고, 청양고추는 열 배 넘게 맵습니다. 붉게 익을수록 베타카로틴이 늘고, 풋고추에는 비타민 C가 많습니다. 보통 먹는 양의 고추가 몸에 해롭다고 볼 근거는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식도암 위험을 살핀 연구
여러 나라의 관찰 연구를 모아 분석한 대규모 논문에서, 고추를 가장 많이 먹는 집단은 적게 먹는 집단보다 식도암 발생 위험이 뚜렷하게 높았습니다. 위암과 대장암은 연구마다 결과가 엇갈려, 관련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여기서 짚을 대목이 있습니다. 이 결과는 고추를 많이 먹는 사람들에게서 식도암이 더 자주 관찰됐다는 뜻이지, 고추가 암을 일으킨다고 밝힌 것은 아닙니다. 고추를 아주 맵게 먹는 지역에서는 뜨거운 국물을 즐기거나 음주와 흡연이 잦은 경우가 많아, 어느 쪽이 영향을 준 것인지 가려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구진도 보통 수준으로 먹을 때 같은 위험이 따르는지는 더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식도 점막이 강한 매운맛과 높은 온도에 거듭 노출되면 상처와 회복을 되풀이한다는 점은 여러 연구에서 관찰됩니다. 매운 음식을 뜨거운 상태로 급하게 넘기는 습관이 겹칠 때 점막이 받는 자극이 커진다고 봅니다.
텃밭 고추, 이렇게 드세요
고추를 밥상에서 뺄 일은 아닙니다. 먹는 방법만 조금 손보면 됩니다. 오늘 저녁부터 이렇게 챙겨 보세요.
- 찌개와 국은 불에서 내린 뒤 한 김 식혀 드세요. 김이 오를 때 곧바로 넘기는 습관이 식도에 가장 부담을 줍니다.
- 청양고추를 한 끼에 몰아 먹기보다 며칠에 나눠 드세요. 오이고추나 꽈리고추를 섞으면 매운맛이 눅어집니다.
- 매운 안주에 술을 곁들이는 자리를 줄여 보세요. 알코올은 점막 손상을 키웁니다.
- 매운 음식을 먹고 속이 쓰리거나 삼킬 때 걸리는 느낌이 이어지면, 양을 줄이고 진료를 받아 보세요.
고춧가루로 담근 김치나 말린 고추처럼 오래 두고 조금씩 쓰는 형태는 한 번에 들어가는 양이 적습니다. 여름에 딴 고추를 잘 말려 두면 겨울 밥상까지 나눠 먹기 좋습니다.
오늘 저녁 찌개는 불을 끄고 삼 분쯤 두었다가 뜨세요. 텃밭 고추의 맛은 그대로 남고, 식도가 받는 열만 줄어듭니다.
참고 — 고추 섭취와 소화기계 암 위험을 분석한 국제 연구진의 체계적 문헌고찰과 메타분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