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한쪽, 도르르 쏟아지는 초록
호미님, 초여름 텃밭에서 완두 꼬투리를 손으로 까 보신 적 있으신가요. 손톱으로 봉합선을 살짝 누르면 톡 하고 벌어지면서 동그란 알들이 도르르 굴러 나옵니다. 갓 깐 한 알을 그대로 입에 넣으면 풋내 사이로 은근한 단맛이 돌지요. 밥솥에 한 줌 넣어 완두콩밥을 짓거나, 죽에 풀어 넣거나, 수프로 곱게 갈아 떠먹는 식탁의 풍경도 익숙하실 겁니다.
완두는 봄에 심어 초여름에 거두는 작물이라, 텃밭을 가꾸는 분들에게는 한 철의 시작과 끝을 알려 주는 정겨운 동무이기도 합니다. 꽃이 지고 꼬투리가 통통하게 차오르면 비로소 수확의 손맛이 시작되지요. 이렇게 흔하게 만나는 완두콩을 옛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을까요. 동의보감의 시선으로 잠깐 들여다보겠습니다.
동의보감은 이렇게 봅니다
동의보감은 완두콩(완두콩)을 성질이 평(平)하고 맛은 단 곡채로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평하다'는 말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독이 없고 성질이 무난해, 옛 기록은 완두를 가장 부담 없는 보양 곡채(穀菜)로 꼽았습니다.
약기운이 향하는 곳은 비(脾)와 위(胃)입니다. 동의보감은 완두콩을 비위를 보강하고 기(氣)를 보충하는 식재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몸이 한창 회복할 때나 노약자가 부드럽게 챙겨 먹는 영양원으로 적합하다고 적었습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소갈(消渴)에 관한 기록입니다. 소갈은 오늘날의 당뇨에 견주어 이해되는 옛 병증인데, 동의보감은 갈증과 소갈을 누그러뜨리는 데 완두콩을 권했습니다. 늘 목이 마르고 물을 찾는 증상을 다스리는 곡식으로 헤아렸던 셈입니다. 더불어 구토를 멎게 하는 쓰임도 함께 전합니다. 입덧으로 속이 울렁이거나 위장이 자극받아 구역질이 날 때 완두를 떠올렸다는 기록입니다. 동의보감은 이처럼 완두콩을 비위를 다독이고 갈증을 가라앉히며 속을 진정시키는 무난한 곡식으로 본 셈입니다. 어느 한 가지 증상을 세게 다스리기보다, 몸의 바탕을 부드럽게 받쳐 주는 식재로 완두를 헤아렸다고 읽힙니다.
오늘의 영양학과 견주면
이런 옛 시선은 현대 영양학의 관점과도 제법 맞닿는 데가 있습니다. 완두콩은 식물성 단백질과 식이섬유, 그리고 여러 미네랄을 고루 갖춘 식재입니다. 동의보감이 '영양 회복'의 자질로 본 부분이 이 단백질과 식이섬유, 미네랄의 풍부함과 통합니다.
소갈에 권했다는 기록도 한번 곱씹어 볼 만합니다. 식이섬유와 단백질이 함께 든 음식은 혈당이 완만하게 오르도록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동의보감이 갈증과 소갈에 완두를 권한 대목을 현대 영양학의 언어로 다시 읽으면 이 식이섬유와 단백질의 역할로 이어집니다. 물론 이는 일상적인 영양 상식의 차원이며, 완두콩이 어떤 병을 낫게 한다는 단정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옛 기록과 오늘의 영양 지식이 한 식재 위에서 슬며시 겹친다는 정도로 받아들이시면 충분합니다.
텃밭에서 식탁으로
완두콩은 식탁에 올리는 방법이 넉넉합니다. 가장 손쉬운 길은 역시 완두콩밥입니다. 쌀 위에 한 줌 얹어 지으면 평하고 단 성질이 밥에 부드럽게 배어듭니다. 속이 편치 않거나 회복기에 있는 분이라면 완두콩 죽이나 곱게 간 완두 수프가 좋습니다. 부드럽게 넘어가면서 비위에 부담이 적지요. 완두콩 부침으로 부쳐 내거나, 텃밭에서 갓 틔운 완두 새싹을 샐러드로 곁들이는 것도 산뜻한 방법입니다.
다만 몇 가지는 가볍게 일러두고 싶습니다. 완두콩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헛배가 부르거나 배가 더부룩해질 수 있습니다. 콩과 식재의 특성이니 적당한 양으로 즐기시는 편이 편안합니다. 통풍이 있는 분이라면 콩과 식품을 더러 자제하라는 권고가 있는데, 완두는 퓨린이 비교적 낮은 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호미님, 텃콩 한 줌의 단맛 속에는 옛 사람이 비위를 다독이고 갈증을 달래던 살뜰한 살림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올여름 완두를 까실 때, 그 동그란 알들을 한 번 더 정답게 바라봐 주시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