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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물 도감

쌀보리로 밥 한 그릇을 짓는 이유

베타글루칸과 폴리페놀이 혈당·지질에 하는 일

보리밥 솥을 열면 고슬고슬한 낟알과 구수한 냄새가 함께 올라옵니다. 그 보리 가운데 탈곡만 해도 껍질이 자연히 분리되는 품종이 있습니다. 쌀보리, 또는 나맥(裸麥, Hordeum vulgare var. nudum)이라 부르는 작물입니다. 티베트 고원에서 3,500년 넘게 재배해 온 이 품종은 겉보리와 달리 도정 과정이 필요 없어 수확 직후 바로 식용할 수 있습니다. 혈당과 콜레스테롤을 신경 쓰는 이들의 식탁에 다시 오르고 있는 데는 그럴 만한 근거가 있습니다.

쌀보리 낟알 안에 무엇이 들었나

쌀보리에는 식이섬유, 단백질, 전분, 폴리페놀(polyphenol), GABA(감마아미노부티르산, γ-aminobutyric acid)가 들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혈당·지질 조절에 가장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성분은 베타글루칸(β-glucan)과 폴리페놀입니다.

베타글루칸은 보리 세포벽에 분포하는 수용성 식이섬유입니다. 소화관 안에서 점도가 높아지면서 포도당이 흡수되는 속도를 늦추고, 담즙산과 결합해 콜레스테롤이 재흡수되는 양을 줄입니다. 쌀보리는 같은 무게의 밀보다 베타글루칸 함량이 높아, 통곡물 식품 가운데서도 자주 언급되는 편입니다.

폴리페놀은 페놀산(phenolic acid)과 플라보노이드(flavonoid) 계열이 주를 이룹니다. 세포의 산화 손상을 줄이는 항산화 작용 외에도, 혈당 흡수와 관련된 소화 효소 활성을 억제할 것으로 연구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다만 폴리페놀의 체내 흡수율은 조리 방법과 개인의 장내 환경에 따라 차이가 큽니다.

GABA는 신경 흥분을 완화하는 아미노산입니다. 발아 과정에서 함량이 늘어나는 특성이 있으며, 혈압 조절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현재로선 결론을 내리기에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혈당·지질·항산화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나

여러 임상 연구에서 쌀보리를 포함한 보리 식이를 8~12주 섭취한 참여자들에게서 공복 혈당과 혈중 중성지방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LDL 콜레스테롤 수치도 함께 낮아진 사례가 많았습니다. 면역 기능 지표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보고되고 있으나, 아직 연구가 많지 않습니다.

항산화 효과는 폴리페놀 함량과 연관이 있습니다. 쌀보리를 발아시키거나 발효시키면 폴리페놀이 일부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집에서 쌀보리를 하루 이틀 불렸다가 살짝 싹을 틔운 뒤 말려서 밥에 섞으면, 일반 쌀보리보다 폴리페놀 함량이 높은 낟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쌀보리는 혈당 강하제나 이상지질혈증 치료제를 대신할 식품이 아닙니다. 정제 탄수화물의 일부를 통곡물로 바꾸는 식단 조정의 한 재료로 이해하면 됩니다. 연구에서 자주 쓰인 섭취량은 하루 40~50g 수준으로, 밥·죽·수프에 섞어 꾸준히 먹는 형태였습니다.

텃밭에서 기르기

쌀보리는 가을에 씨를 뿌리는 작물입니다. 10월 중순에서 11월 초 사이에 파종하면 이듬해 6월에 수확합니다. 배수가 잘 되는 흙을 선호하고 건조한 환경에도 잘 견딥니다. 파종 전 퇴비를 충분히 섞어 두면 추가 시비 없이도 자랍니다.

이삭이 패는 5월이면 낟알이 촘촘히 달리는 모습으로 밀과 구분이 됩니다. 수확 후 탈곡하면 껍질이 자연히 떨어지므로 도정 없이 낟알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이 점이 겉보리와 다른 부분입니다.

작은 텃밭이라면 1~2평에 줄뿌림으로 심어보세요. 수확량은 많지 않더라도, 직접 기른 쌀보리로 밥을 짓는 과정이 작물을 이해하는 좋은 경험이 됩니다.

오늘 저녁 밥솥에 쌀보리 한 줌 더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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