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텃밭에서 만나는 수박
호미님, 칠팔월 땡볕에 텃밭 일을 하다 보면 그늘에 앉아 한입 베어 물 무언가가 절실해집니다. 그럴 때 냉장고에서 꺼낸 수박 한 조각만큼 반가운 것이 없습니다. 아삭하게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입안 가득 퍼지는 단물이 더위에 지친 몸을 잠시 식혀 줍니다.
수박은 우리 텃밭에서 키우기에는 자리를 제법 차지하는 작물이지만, 덩굴을 뻗으며 둥글게 영그는 열매를 지켜보는 재미가 큽니다. 동의보감에 적힌 기록을 보면, 수박이 우리 땅에 들어온 내력도 함께 적혀 있습니다. 거란이 회흘을 정벌하면서 이 씨앗을 얻어 소똥으로 덮어 길렀고, 그 열매가 박처럼 둥글고 크며 빛깔이 푸른 옥 같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북쪽 땅에 많았으나 점차 남북으로 퍼져 곳곳에 자라게 되었고, 유월 칠월이면 익는다고 적었습니다. 텃밭에서 익어 가는 수박을 보며 옛 기록을 떠올리면, 한 통의 열매에 긴 내력이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동의보감은 이렇게 보았습니다
동의보감은 수박(西瓜)을 두고 성질이 차고(性寒), 맛은 달면서도 매우 담박하며(味甘極淡), 독이 없다(無毒)고 적었습니다. 무더운 계절에 먹는 과일로서, 그 차가운 성질이 몸의 열을 다스리는 데 쓰인다고 본 것입니다.
주된 효능으로는 번열과 갈증을 누르고(壓煩渴), 더위의 독을 풀며(消暑毒), 속을 편하게 하고 기를 내리며(寬中下氣), 소변을 잘 통하게 한다(利小便)고 기록했습니다. 또한 혈리를 다스리고(治血痢) 입안이 헐었을 때 쓴다(療口瘡)는 내용도 함께 적혀 있습니다. 한글 주해를 보면, 여름 폭염이나 더위 먹은 증세에 갈증과 번열을 풀어 주는 과일로 보았고, 부종이나 소변이 시원치 않을 때 이뇨를 돕는 것으로 정리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수박 껍질을 따로 약재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한방에서는 이를 서과취의(西瓜翠衣)라 부르며, 부종이나 여름 설사에 쓰는 재료로 다루었다고 주해는 전합니다. 살만 먹고 버리던 껍질에도 쓰임을 둔 옛사람들의 알뜰함이 엿보입니다. 동의보감은 또 양계과(楊溪瓜)라는 다른 종류도 소개하는데, 가을에 나서 겨울에 익으며 속이 연지처럼 붉고 맛이 수박보다 낫다고 적었습니다.
오늘의 영양학과 견주면
동의보감이 수박을 더위와 갈증을 푸는 과일로 본 관점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상식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수박은 수분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과일이라,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에 수분을 보충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동의보감이 말한 갈증 풀이(解暑除煩)는 곧 이 풍부한 수분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이 소변을 잘 통하게 한다(利小便)고 본 대목도, 수분이 많은 과일을 먹었을 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변화와 어긋나지 않습니다. 술독을 푸는 쓰임(解酒)으로 본 것 역시, 음주 뒤에 수박 한 조각으로 수분을 채우던 오랜 습관과 통합니다. 다만 호미님, 이런 이야기는 동의보감의 전통적 관점과 일상의 경험을 견주어 보는 정도로 받아들이시면 좋겠습니다. 수박이 특정 증상을 치료한다고 단언하기보다, 옛 기록과 오늘의 상식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살피는 자리로 여기시길 바랍니다.
텃밭에서 식탁으로
수박은 생으로 먹는 것이 가장 흔한 방법입니다. 즙을 내거나 화채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동의보감 주해가 일러 주듯 껍질은 절임으로 활용하거나 한방 처방에 쓰기도 합니다. 살만 먹고 버리기 아까운 껍질을 얇게 저며 볶거나 무쳐 먹는 손맛도 한번 시도해 보실 만합니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동의보감이 적었듯 수박은 성질이 차가운 과일입니다. 그래서 주해는 위가 약하거나 평소 찬 체질인 분, 설사 기미가 있는 분, 생리 중이거나 임신 후반의 경우에는 양을 줄이는 편이 좋다고 일러 줍니다. 너무 차게 식힌 수박은 오히려 위장에 부담을 줄 수 있으니, 냉장고에서 갓 꺼낸 것보다 잠시 두어 찬 기운을 누그러뜨린 뒤 드시는 편이 한결 편안합니다.
여름 텃밭에서 키운 수박 한 통을 식탁에 올리며, 그 안에 담긴 옛사람들의 기록을 함께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요. 더위를 식히는 한 조각이 조금 더 깊은 맛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