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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비자, 처음 먹는 날은 몇 알이 알맞을까

지방유가 절반인 침엽수 씨앗을 배탈 없이 먹는 양과 손질, 보관

북반구 기준 9월부터 11월까지가 비자를 거두는 시기입니다. 이 무렵 비자 한 봉지를 처음 받아 든 분들은 효능보다 양을 먼저 궁금해합니다. 한 번에 몇 알을 먹어도 되는지, 아이에게 줘도 되는지, 겉껍질은 맨손으로 벗겨도 되는지를 묻습니다. 비자는 주목과에 속하는 비자나무(Torreya nucifera)의 씨로, 일본·한국·중국에서 주로 기릅니다. 흔히 먹는 견과가 아니어서 얼마나 먹어야 알맞은지 몸으로 아는 사람이 드뭅니다. 심는 달과 성분 자료는 호미클럽 작물도감의 비자 항목에 모아 두었습니다.

알맹이의 절반이 기름입니다

열매 겉의 육질 껍질을 벗기면 씨가 나오고, 씨의 껍질을 벗긴 속 알맹이를 먹습니다. 이 알맹이는 지방유(fatty oil)가 절반을 차지합니다. 볶았을 때 고소하고 기름기가 도는 것도 이 지방유 때문입니다. 다만 기름이 많은 만큼 한 번에 여러 알을 먹으면 배가 아프거나 설사를 하기 쉽습니다.

기름의 조성도 흔한 견과와 조금 다릅니다. 비자나무 씨 기름에서 사이아도닉산(sciadonic acid)처럼 침엽수 씨앗에서 주로 보이는 지방산을 확인한 연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성분을 분석했을 뿐, 이 지방산이 몸에 이롭다는 것을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비자를 익숙한 견과처럼 한 줌씩 집기보다 처음 맛보는 씨앗으로 대하는 편이 몸에 무리가 적습니다.

처음 먹는 날은 몇 알로

옛사람들도 양을 따졌습니다. 《동의보감》은 과부(果部)에 비자를 榧子로 싣고, 옥비(玉榧)라고도 하며 그 지방 사람들은 적과(赤果)라 부른다고 적었습니다. 성질이 평(平, 차지도 덥지도 않음)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했고, 껍질을 벗기고 속 알맹이를 먹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옛 처방 기록에서는 비자를 쓸 때 하루에 먹는 개수를 정해 두었습니다. 독이 없다는 말이 곧 많이 먹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 성질 기록은 옛 의서가 남긴 것이며, 지금의 영양학 판단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처음 먹는 날은 몇 알로 시작해 몸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우선 볶은 비자 몇 알만 접시에 덜어 천천히 씹어 보세요. 그날 저녁과 다음 날 아침까지 배가 편한지 지켜보고, 괜찮다면 조금씩 늘려 보세요. 늘리더라도 한 번에 여러 알을 몰아 먹지는 마세요. 어린이에게는 어른보다 더 적게 주세요.

견과류에 반응한 적이 있다면 더 조심스럽게 시작하세요. 비자는 흔히 먹는 견과가 아니어서 알레르기가 있는지 모르는 채 처음 접하기 쉽습니다. 이런 분은 한두 알만 먹고 입안이 가렵거나 입술이 붓지 않는지 지켜보세요. 이상이 느껴지면 더 먹지 말고 의사와 상의하세요.

껍질은 장갑을 끼고, 볶을 때는 마른 팬에

생 비자를 받았다면 손질부터 챙기세요. 열매 겉을 싼 육질 껍질, 곧 가종피(aril)에는 수지 성분이 있어 맨손으로 오래 만지면 손이 끈적하고 따가울 수 있습니다. 껍질을 벗길 때는 고무장갑을 끼고, 꺼낸 씨는 물에 씻어 말려 두세요.

먹을 때는 기름을 두르지 않은 팬에 약한 불로 살짝 볶아 보세요. 열이 닿으면 향이 짙어지고 속껍질의 떫은맛이 줄어듭니다. 볶은 알맹이에서는 견과와는 다른, 침엽수 씨앗 특유의 향이 납니다. 볶은 비자를 꿀이나 조청(곡물을 고아 만든 묽은 엿)에 버무리면 고소함에 단맛이 더해집니다. 제주도에서 만들어 먹던 법에 가깝습니다. 단맛이 붙으면 더 많이 먹게 되기 쉬우니, 버무리기 전에 먹을 만큼만 먼저 덜어 두세요.

기름이 많아 빨리 상합니다

지방유가 많은 씨앗은 보관도 신경 써야 합니다. 기름은 공기와 열에 오래 닿으면 산패(기름이 산소와 만나 상하는 것)해 쩐내가 나고, 비자의 지방유도 산패가 빠른 편입니다. 그래서 한꺼번에 많이 볶기보다 며칠 먹을 양만 볶고, 나머지는 밀폐 용기에 담아 서늘한 곳이나 냉장고에 두세요. 기름 쩐 냄새나 쓴맛이 나는 알은 먹지 말고 버리세요.

오늘 처음 비자를 맛본다면 몇 알만 덜어 먹고, 내일 아침 배가 편한지부터 확인해 보세요.

출처: 허준, 《동의보감》 탕액편 과부(果部) 榧子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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