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반구의 10월 하순, 텃밭과 베란다에서는 밤 기온이 내려가면서 따뜻한 기후에서 온 화분을 실내로 들일 때를 살핍니다. 고량강(Alpinia officinarum)도 그런 화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생강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땅속에 단단하고 향이 강한 뿌리줄기를 냅니다. 영어권에서는 갈랑갈(galangal)이라 부르며, 태국·베트남 요리에 넣는 향신 뿌리와 같은 무리입니다.
《동의보감》이 적은 성질과 쓰임
《동의보감》은 고량강(高良薑)을 草部(초부)에 실었습니다. 성질은 뜨겁고, 맛은 맵고 쓰며, 독이 없다(無毒)고 적었습니다. 이름은 산지인 중국 고량군(高良郡)에서 왔고, 생김새는 산강(山薑)을 닮았다고 했습니다. 표제에는 중국에서 들여오는 약재에 붙이던 【唐】 표시가 있습니다.
손질법도 한 줄 남겼습니다. 썰어서 기름에 볶아 쓴다는 것입니다. 이 서술은 옛 의서의 기록이며 지금의 의학 판단과는 다릅니다. 뜨겁다·차다는 당시 약재를 나누던 기준이었고, 온도계로 잰 값을 뜻하지 않습니다. 원문과 풀이는 호미클럽 《동의보감》 고량강 항목에서 읽어 보세요.
성분 분석과 견주어 보면
지금의 분석은 고량강을 성분으로 나누어 봅니다. 갈랑긴(galangin)은 갈랑갈이라는 이름을 딴 플라보놀(flavonol)로, 뿌리줄기에서 분리되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특유의 냄새는 매캐한 솔 향을 내는 1,8-시네올(1,8-cineole)을 비롯한 정유(essential oil) 성분에서 옵니다.
옛 기록과 지금의 분석은 어디서 겹칠까요? 손질법이 먼저 겹칩니다. 정유는 기름에 잘 녹아 나오므로, 썰어서 기름에 볶으라는 옛 지시는 향을 많이 끌어내는 순서와 맞아떨어집니다. 맵고 쓰다는 기록도 지금 혀로 느끼는 맛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점도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성질과 맛으로 약재를 설명했고, 성분 분석은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밝힙니다. 갈랑긴과 정유에 관한 보고는 성분 조성과 향을 다룬 것이어서, 몸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까지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정유는 휘발 성분이라 말리고 보관하는 동안 조성이 달라진다는 결과도 함께 실렸습니다. 같은 고량강이라도 갓 캔 것과 오래 말린 것은 향이 다를 것입니다.
화분에 심고 겨울나기
고량강은 서리에 약합니다. 겨울에 서리가 내리는 지역이라면 화분에 심어 두고, 추워지기 전에 실내로 들여놓으세요.
- 심기: 고량강 생뿌리줄기 가운데 눈이 도톰하게 붙은 토막을 고릅니다. 눈이 위를 향하도록 얕게 묻습니다.
- 돌보기: 흙은 물이 잘 빠지게 섞고, 겉흙이 마르면 물을 줍니다. 겨울 실내에서는 밝은 창가에 두고, 자라는 속도가 느려지므로 물을 줄입니다.
- 거두기: 포기가 충분히 퍼진 뒤 화분 가장자리 흙을 헤쳐 필요한 만큼만 잘라 씁니다. 나머지 포기를 그대로 두면 이듬해에도 거둘 수 있습니다.
심고 거두는 때는 사는 곳의 기후에 맞춰 잡으세요. 궁합과 성분은 호미클럽 작물도감의 고량강 항목에 모아 두었습니다.
기름에 볶고 국물에 우리기
먹을 때 먼저 느끼는 것은 맵고 쓴 맛과 솔 향입니다. 다만 뿌리줄기의 섬유질은 굵어서 씹어 넘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고량강은 대부분 향을 내고 건져 내는 재료로 씁니다.
- 기름에 볶기: 페이스트를 만들 때 얇게 썬 고량강을 먼저 볶으면 정유가 기름에 녹아 나옵니다. 태우면 쓴맛이 돌므로 색이 나기 전에 다음 재료를 넣으세요.
- 레몬그라스·라임잎: 똠얌(tom yum, 태국식 맵고 새콤한 국물)의 향은 갈랑갈·레몬그라스·라임잎이 함께 냅니다. 국물이 끓기 시작할 때 넣고 오래 두지 않습니다. 셋 다 섬유가 질겨 먹기 전에 건져 냅니다.
- 코코넛밀크: 고량강을 먼저 볶아 향을 낸 뒤 코코넛밀크를 부으면 정유가 밀크의 지방에 녹아 국물 전체로 퍼집니다. 센 불에 오래 끓이면 밀크가 분리되니 약한 불에 두세요.
정유는 휘발하므로 쓰기 직전에 써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은 고량강 한 토막을 얇게 썰어 기름에 색이 나기 전까지만 볶고, 그 향을 맡아 보세요.
출처: 허준, 《동의보감》 草部 '고량강(高良薑)' 항목 · 성분과 향은 호미클럽 작물도감의 분석 정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