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텃밭, 보랏빛 가지를 따며
호미님, 한여름 텃밭에 나가 보면 짙은 보랏빛으로 윤이 흐르는 가지가 묵직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손바닥에 닿는 매끈한 껍질, 살짝 당기면 톡 떨어지는 그 손맛이 가지 농사의 즐거움입니다. 한 그루에 줄줄이 열려 끼니마다 식탁에 오르니, 여름내 가장 든든한 동무가 되어 주는 작물이기도 합니다.
저녁 식탁에 올라 찜으로 부드럽게, 구이로 고소하게 변신하는 이 흔한 작물이 옛 의서에서는 어떻게 다뤄졌을까요. 동의보감을 펼쳐 보면 가지는 단순한 여름 반찬을 넘어 여러 쓰임을 가진 작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의보감 속 가지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 드리겠습니다.
동의보감은 이렇게 봅니다
동의보감은 가지(가지, 茄子)를 두고 성질이 차갑고 맛은 달며 독은 없다고 적었습니다. 차가운 성질을 가진 만큼 몸의 열을 식히는 쪽으로 쓰였습니다. 원문에는 한열(寒熱)을 다스리고 오장의 노열(五藏勞), 그리고 오래 묵은 노기(傳尸勞氣)를 주관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글 주해로 풀면 만성 피로와 미열을 차갑게 식혀 가라앉히는 관점입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대목은 어혈을 흩는다(散瘀)는 풀이입니다. 어혈이란 한자리에 머물러 흐르지 못하는 피를 가리키는 옛말인데, 동의보감은 가지를 멍이나 타박상, 하초의 출혈에 떠올렸습니다. 가지의 약 기운은 위·대장·간·방광으로 간다고 보았습니다. 한 작물의 기운이 어느 장부로 향하는지까지 나눠 본 점에서 옛 의서의 세심함이 묻어납니다.
먹는 가지 말고도 동의보감은 뿌리와 마른 줄기, 잎을 따로 약재로 적었습니다. 원문에 가지 뿌리와 줄기를 끓인 물에 동상 부위를 담가 씻으라(主凍瘡, 煎湯浸洗)고 한 대목이 그것입니다. 한국 민간에서는 동상뿐 아니라 옴이나 창양에 같은 방식을 썼고, 잇몸 출혈에는 가지꼭지를 태운 가루를 환부에 발랐다고 주해는 전합니다. 가지 한 작물에서 열매와 뿌리, 줄기, 꼭지까지 쓰임을 나눠 본 옛 시선이 흥미롭습니다.
다만 동의보감은 가지를 두고 많이 먹지 말라(不可多食)는 단서도 함께 달았습니다. 차가운 성질이 강한 데다, 다량을 오래 먹으면 기를 막는다(動氣)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영양학과 견주면
동의보감이 말한 어혈을 흩는 성질은 오늘날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와 겹쳐 읽어 볼 만합니다. 가지 껍질의 짙은 보랏빛이 안토시아닌인데, 현대 약리에서는 혈관을 보호하는 쪽으로 연구되는 성분입니다. 옛사람이 멍과 출혈을 떠올린 자리에, 지금은 혈관이라는 단어가 놓이는 셈입니다.
가지는 수분이 많고 열량이 낮으며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입니다. 동의보감이 위장을 부드럽게 달래는 식이로 본 점과, 오늘날 가벼운 채소로 분류하는 시각이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다. 속을 편하게 하는 부드러운 한 끼라는 인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셈입니다. 물론 이런 교차는 일반 상식 수준의 견줌이니, 가지를 먹는다고 특정 효과가 나타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동의보감의 기록은 그 시대의 관점으로 읽어 주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성질이 차갑다는 옛 기록도 새겨 둘 만합니다. 위가 약하거나 평소 몸이 차고 설사 기미가 있는 분이라면 동의보감의 조언대로 양을 조절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텃밭에서 식탁으로
호미님이 거둔 가지는 찜·구이·조림·튀김으로 두루 즐기실 수 있습니다. 차가운 성질이 마음에 걸린다면 기름에 굽거나 볶아 따뜻하게 조리해 먹는 방법이 무난합니다. 동의보감도 약으로 쓸 때는 노란 가지(黃茄)를 주로 썼고 나머지는 그저 나물로 먹었다고 적었으니, 일상에서는 편하게 반찬으로 누리시면 됩니다.
주의할 점도 옛 기록 그대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한꺼번에 많이, 오래 먹는 일은 피하시고, 위가 차고 약한 분은 양을 줄이시길 권합니다. 드물지만 가지과 식물에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도 있으니 처음 많이 드실 때는 살펴 가며 드십시오. 텃밭에서 거둔 보랏빛 가지가 호미님의 여름 식탁을 한결 시원하게 채워 주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