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초입, 텃밭 울타리를 타고 오른 덩굴에 포도송이가 검붉게 익습니다. 한 번 심어 두면 해마다 열매를 내니, 포도는 여러 해 함께하는 작물입니다. 아프리카 동북부 에티오피아의 북쪽 고원에는 그렇게 긴 세월을 버틴 포도나무들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연구진이 이 나무들의 유전자와 역사를 함께 살펴,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테프를 처음 기른 고원의 포도
에티오피아 북부 고원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농경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세계 여러 곳에서 먹는 콩류와 곡물이 이곳에서 처음 길러졌고, 아주 작은 낟알로 납작한 빵 인제라(injera)를 굽는 테프(teff)도 이 고원에서 왔습니다. 그러나 같은 고원의 티그라이(Tigray) 지역에서 포도나무가 오래 자라 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티그라이는 건기가 길고 가뭄이 잦은 곳입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전쟁도 겪었습니다. 밭을 돌볼 수 없던 시기가 길었는데도 오래된 포도나무 일부가 지금까지 살아 있습니다. 현지에서는 교회 예배에 쓸 포도주를 얻으려고 포도를 길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다만 기록으로 모두 확인된 내용은 아니어서 전승으로 읽는 편이 맞습니다.
오래된 나무가 지닌 유전 정보
연구진은 티그라이에 남은 포도나무의 유전자를 살피고, 이 지역 포도 재배의 역사를 되짚었습니다. 그리고 이 나무들이 유전 자원으로도, 지역 농사의 역사 자료로도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포도는 주로 가지를 잘라 심는 꺾꽂이로 늘립니다. 그래서 한 그루의 성질이 씨앗을 거치지 않고 수백 년 동안 그대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비가 적은 고원에서 사람 손길 없이 살아남은 나무라면 가뭄을 견디는 성질을 지녔을지 모릅니다. 기후가 바뀌면서 여름 가뭄을 겪는 포도 산지가 늘고 있어, 이런 지역 포도는 새 품종을 만들 때 쓸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성질이 실제로 얼마나 강한지는 밭에서 더 길러 보며 확인해야 합니다.
껍질과 잎까지 먹는 포도
포도의 검붉은 색은 껍질에 든 안토시아닌(anthocyanin)에서 나옵니다. 껍질과 씨에는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 같은 폴리페놀(polyphenol)도 들어 있습니다. 이 성분들이 몸속 산화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 연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먹었을 때 어느 정도 효과를 내는지는 아직 단정하기 이릅니다. 포도는 깨끗이 씻어 껍질째 드셔 보세요. 과육만 먹을 때보다 이 성분들을 더 많이 챙길 수 있습니다.
어린 포도잎도 먹을 수 있습니다. 지중해와 중동에서는 데친 포도잎에 쌀을 싸서 익힌 돌마(dolma)를 즐겨 먹습니다. 잎에 밥을 싸 먹는 한국의 쌈과 닮은 음식입니다. 농약을 치지 않은 텃밭 포도라면 봄에 연한 잎을 몇 장 따서 데쳐 보세요.
텃밭 포도 한 그루 오래 기르기
포도는 햇볕이 잘 들고 물이 잘 빠지는 자리를 좋아합니다. 땅이 없다면 넓고 깊은 화분에 심고 벽이나 울타리에 덩굴을 올려도 됩니다. 북반구 기준 1~2월 휴면기에 지난해 자란 가지를 눈 두세 개만 남기고 잘라 주면, 그해 열매가 고르게 달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동네에 오래된 포도나무가 있다면 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가지치기 때 잘라 낸 가지를 얻어 보세요. 연필 굵기의 가지를 눈 서너 개 길이로 잘라 촉촉한 흙에 꽂아 두면, 봄에 뿌리를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티그라이의 나무처럼 한 동네에서 오래 자란 포도는 그 지역 날씨를 이미 겪어 본 나무입니다.
올겨울 가지치기 철에 이웃의 오래된 포도나무 가지 하나를 얻어 화분에 꽂아 보세요.
참고: 에티오피아 티그라이 지역 오래된 포도나무의 유전·역사 가치에 관한 연구 기고
